해수부 '부산 인재'는 어떻게 발굴해야 하나

부산은 부경대, 해양대, 해사고 등 해양수산 전문인력의 성지(聖地)다. 이재명 대통령은 23일 해양수산부 임시청사 개청식에 앞서 가진 국무회의에서 "공석중인 해수부장관 후임으로 가급적 부산 지역에서 인재를 구해 보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또 부산을 "동북아 해양도시로 도약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도 하겠다"고도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북극항로 개척'과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에 대한 공약을 실천했다. 이 대통령은 또 "북극항로 주인은 부산"이라고도 밝혔다.

역대 정권의 대통령들이 후보 시절 '부산해양특별시' 공약을 해놓고도 당선되고 난 뒤 실천하지 않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기대가 크다. 특히 후임 해수부장관을 부산 인재에서 찾고 있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다만 '부산 인재'도 인재 나름일 것이다.

김영삼 정권이 해양수산부를 발족시키고 초대 장관에 신상우 의원을 임명했다. 그후 24명의 해양수산 장관이 탄생했다. 부산·경남 출신은 11명이나 됐다. 이들이 '부산 인재'라고 할수 있다. 그러나 유감인 것은 역대 해양수산부장관 가운데 해양수산에 대한 전문성과 현장체험을 통해 정책개발이나 입법활동 경험자는 한 명도 없었다.

신상우, 노무현, 정상천, 유기준, 전재수 등…해양수산과는 거리가 먼 인물들이었다. 심지어 경찰출신 J 장관은 전문성 부족이라는 언론의 지적에 대해 "평소 생선을 좋아해서 바다에 관심이 많았다"며 웃지못할 촌극을 보이기도 했다. 삼치보고 고등어라고도 했다. 특히 이재명 정부 초대 해양수산부 장관이었던 전재수 의원은 세칭 통일교게이트와 관련된 의혹 때문에 해수부장관 최초의 낙마자가 되는 불명예를 남기기도 했다.

그렇다면 '부산 인재'는 어떻게 발굴해야 할까? 장관이 되면 공부해가면서 해양수산부를 잘 이끌고 가겠다는 포부만으로는 '부산 인재'가 될 수 없다. 요즘 언론이 보도하고 있는 자천·타천의 장관 희망자 면면을 보면 도토리 키재기 같은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로는 치열한 해양주권 확보라는 막강한 국익을 쟁취하고 지켜 나가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재명 대통령도 "중국어선 서해어장 침범에 대해 불법 조업하면 돈도 엄청나게 뺏기고 구류된다는 사실을 인지시키라"고 해양경찰에 지시한 바 있다. 어디 이뿐인가? 200 해리 경제수역 시대에 원양어장과 어획쿼터 확보 문제 등 원양산업 발전이란 책무도 해양수산에 대한 전문성과 굳센 의지가 없으면 이루어 내기 힘들 것이다.

'부산인재 발굴'은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부산은 해양수산 학문의 메카다. 국립부경대학교(전 국립부산수산대학교)와 국립해양대학교, 국립해사고등학교 등 해양수산 학문 교육기관에서 양성하는 전문인력의 성지(聖地)가 바로 부산이다. 이러한 전문인력을 무시하고 권력지향적 정치인들을 장관직에 기용하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 될 것이다.

해양수산부 고위공직자 가운데 바다에 나가 어선이나 상선을 타가며 바다와 수산, 해운 실무를 체득한 공직자가 과연 몇 명이나 있는가? 남빙양과 북극을 탐사한 공직자가 과연 몇명이나 있는가? 필자가 알기로는 한 명도 없다는 것이다. 1970년대 870여 척이던 원양어선이 지금은 186척뿐이란 사실을 알고 있는가? 수산자원이 줄어들어 잡을 고기가 없기 때문에 선망과 저인망 어선을 감척하고 있다. 비싼 건조비를 투자하여 건조한 선체를 조각조각 잘라내어 고철로 팔고 있는 기막힌 현실을 위정자는 알고나 있는가?

감척대상 어선을 고철로 버릴 것이 아니라 수산 후진국에 ODA 사업으로 지원해주고 해당국가의 연안어장에서 우리 원양어선들이 어로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가? 오늘 대한민국 국회에는 수산 해양전문가가 보이지 않는다. 17대 국회에서는 부산수산대학교 출신 이영호 의원(수산기술사, 수산학박사)이 활발하게 활동하여 여러 건의 해양수산 관련 입법이 활성화 된 바 있다. 당시 입법된 '항만 재개발법'은 부산경제의 심장인 신항만 개발과 북항 재개발의 법적 토대가 됐다. 부산항만공사와 인천항만공사를 발족시켜 항만관리의 현대화를 이끌었다. 부산국제수산 물류센터는 부산이 세계적 수산물류의 거점이 되는 초석이 됐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수산질병 관리법을 비롯하여 원양산업특별법, 해양환경기본법 등이 해양수산업 발전의 법적 근거로 빛나고 있다.

부산수산대학 출신 가운데 허재홍, 김태랑, 이영호 등은 해양수산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일꾼들이었다. 부산이 세계적인 해양도시로 우뚝 서기 위해선 북극항로 하나에만 매달리고 있어선 안될 것이다. 북극항로는 물류 운반을 위한 운송사업이다. 운송사업은 물동량 확보가 생명이다. 해양수산 자원을 기초로 한 제품의 생산이 왕성해야만 북극항로는 활기를 띠게 될 것이다.

실례로 요즘 인기 절정인 김 한 품목만 하더라도 10억 달러의 수출고를 올리고 있다. 실어 나를 화물이 없는 항로는 죽음의 길목이 되고 말 것이다. 북극항로는 '해양·수산·해운물류· 항만'과 직결돼 있다. 부산이 명실상부하게 해양강국으로 뻗어 나가는 '전초기지' 역할을 재대로 발휘하게 하자면 보다 적극적이고 광범위한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공약이 공약(空約)이 돼서는 안된다. 그렇게 하자면 '해운물류' 한 부분에만 한정해서는 안될 것이다. 해사법원과 해양수산 각급 국가기관의 부산 이전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

해운물류가 제대로 이루어지자면 바다의 길(海路)과 하늘의 길(航空), 육로(陸路) 등 3대 기능이 함께 작동돼야 한다. 해양수산부, 그 뿌리는 1948년 7월1일 교통부 해운국과 상공부 수산국이 출발점이다. 1955년 해무청, 1966년 수산청, 1976년 해운항만청, 1996년 해양수산부, 2008년 농림수산식품부, 국토해양부 등 파란만장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바다는 길이요,생명이다. 파도야 치건 말건 바다는 좋은 곳이다. 대한민국의 세계화와 국제화는 바다를 배우고 바다와 함께 동고동락한 이 땅의 '젊은 뱃놈들'이 큰 역할을 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해외어장에서 국부(國富)를 창출하고자 남태평양 참치어장으로 '젊은 바다의 사나이들'을 태워 보내며 시험조업선의 선명(船名)을 남쪽으로 향한다고 해서 '지남호(指南號)'라 명명했다. 그 때 선장과 항해사, 기관사와 젊은 어부들이 잡아 온 '다랑어(참치·Tuna)'가 경무대 현관에 전시되기도 했다. 老대통령과 함께 촬영된 기념사진이 지금도 원양산업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일찍이 해양개척에 나선 국가 치고 발전하지 않은 나라가 없다. 일본과 스페인이 그렇고 포르투갈과 영국. 미국이 그렇다. 바다를 업신여기고 소홀하게 다룬 러시아와 중국의 청나라는 러·일전쟁과 청·일전쟁에서 패전국이 됐다. 원양어장에서 조업중 희생된 선원들의 위령탑이 부산 영도 태종대로 가는 길목에 있다. 달러를 벌어서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에 기여한 애국자들이다. 이들의 희생 위에 오늘의 한국이 해양강국으로 뻗어나갈 좋은 기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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