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방문기가 있음에도 왜 재일동포들은 24년간 속아 갔을까(2)'싸울 줄' 몰랐던 민단(民團)과 남한정부
정보는 국력이다! 국정원 명제이다. 개인도 마찬가지, 사람은 아는 것만큼 행동한다. 착하기 그지 없는 박영숙 여사도 가출을 함으로써 요행 북송선에 오르지 않았다. 학식 있고 점잖은 부모님 슬하에서 열 형제가 큰 소리 한번 나지 않고 학구적으로 성장하여 주변 일본인들이 칭찬할 정도의 <양반> 집안이다.
이런 집안의 앳된 막내딸 박 여사가 강력한 허리케인에 휘말린 것처럼 온 집안이 북송선에 빨려 가는 것에 반동하여 가출을 결행하게 된다. 그 용기는 1960년 8·15 해방절을 맞아 평양을 방문하였던 오귀성의 정보에서 나왔다. 아쉽게도 오귀성의 책은 나오기 전이어서 가족들에게는 읽어볼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온 가족이 북송선을 탄 것은 1960년 겨울인데 책은 1962년에 나왔기 때문이다.
책이 나왔어도 북송선은 중단되지 않았다. 강산이 두 번 변하는 22년간 지속되다 그 간의 처절한 경험이 쌓여 저절로 멈추어선다.
만약 <낙원의 꿈은 깨어지고> 이 책이 재일동포들 속에 널리 읽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저렇게 22년간이나 북송사업이 지속되었을까, 시초부터 치명적인 영향을 주어 북송사업은 일찍이 중단되었을 것이다. 1960년 '북한방문기!'란 말이 회자되었고 그 책은 1962년에야 출판되었으니 말이다.
이런 사실과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북송사업이 그대로 진행된 것은 한 마디로 민단과 남한정부가 <싸울 줄> 몰랐던 결과라고 본다. 조총련 세력이 민단보다 훨씬 셌다고 해도 그렇다. 남한정부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어렵다 해도 이 책을 찍어내고 널리 전파할 정도의 돈이나 영향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마침 반공을 제일 국시로 하는 박정희 정권이라는 호기를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한다는 것은 뿔 달린 빨갱이라는 욕 식으로 하다보니 요즘 반공이란 말을 못할 정도로 되어버렸고 정권마저 내 줄 정도가 된 것이라 본다.
반공의 진수는 '북한방문기!'란 책의 진실을 가지고 널리 전파하는 것이다. 이렇게 진실된 소재로 감정을 빼고 전파하는 데 주력했다면 북송교포 문제도 남한의 반공주의도 영원토록 해결되었을 것이다.
오히려 진실과 반대되는 조총련과 북한, 일본의 좌익쪽에서 대세를 휩쓸었다. 비결은 선동과 문서의 중요성을 신념으로 삼고 사명감 있게 활동했기 때문이다. 이 신념과 사명 앞에 돈이나 따지고 먹고사는 데 우선하느라 정신이 없으니 진실을 가지고도 게임이 안되는 것이다.
이 게임은 현재도 지속되고 있다. 어렵게 이 책을 알아보니 이미 오래 전에 절판되고 출판사도 없어졌다. 천만다행으로 국회도서관에 원본이 보관되어 있었다. 대여가 안되는 고전서로만 남아있었다. 65년 전 책이니 종이가 삭아 부서질 정도였다. 훨씬 늦었지만 이제라도 책을 살려내야겠다고 결심했다. 남을 비판하기보다 솔선수범을 보여야 겠다.
문제는 판권이다. 알아보니 출판사도 사라지고 저자도 사망했는지 알 길이 없다. 그래도 사명감으로 책을 부활시키는 노력부터 해보련다. 이 책이 부활되면 판권을 주장하는 이가 나타나주길 고대한다.
미디어 시대인 요즘 아날로그 식 책은 나라도 잘 안보게 된다. 책 내는 것이 사양사업이니 자기 돈을 들여 책을 내야 한다. 이런 영수증을 준비해놓고 판권자를 기다릴 것이다.
이 책을 부활시키는데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자가 나타난다. 탈북자로서 첫 법무사가 된 임윤미이다. 그는 박영숙 여사의 세 자녀 중 살아남은 유일자녀이다. 마침 그는 북한에서 어문학 박사원 출신으로서 남한에 와서도 국가기관에서 17년간 글을 쓴 경력자이다.
국회도서관서 '낙원의 꿈은 깨어지고' 원본 발견
- 이민복(대북풍선단장)
-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2026-09-08, 05: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