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근 목사의 서글픈 미소

말하고 감옥 가고 말하고 감옥 가고 그는 왜 세상에 왔을까. <"나는 이 일을 하러 왔다">

1976년 봄 단양교회에서 고영근 목사가 신도들에게 외쳤다.

“박정희 대통령이 부인의 묘지를 천 평이 넘게 조성하고 오백만 명이 넘는 국민을 동원해서 참배하게 하는데 이런 것은 개인숭배입니다.”

그가 잡혀 들어가 징역 칠 년을 선고받았다. 그가 석방이 된 후 강진에 있는 교회에서 이런 말을 했다.

“박정희는 북이 남침한다고 하고 김일성은 남쪽에서 북침한다고 하면서 국민을 겁주고 그 슬픔과 아픔을 이용하여 정권 연장을 획책했습니다. 이들이 회개하고 구원받아야 합니다.”

그가 한 말이 다시 긴급조치 위반이 되어 장흥법원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정권은 그에게 앞으로 정치를 거론하지 않고 복음만 전하겠다는 각서만 쓰면 석방하겠다고 회유했다.

“박정희가 나를 고생시켰으면 그가 내 앞에 와서 빌어야지 누구더라 각서를 쓰란 말이요?”

1996년 가을경이었다. 나는 세상에 대해 외치고 있었다.

“교도관들이 어떻게 몰래 사람을 때려죽일 수 있습니까. 어떻게 가죽 수갑을 뒤로 채운 채 사람을 엎어놓고 양재기 속의 밥을 개 같이 핥아 먹게 합니까?”

내가 외치는 소리가 신문에 나기 시작했다.

“별 볼 일 없는 변호사가 뜨기 위해 별 짓을 다하네. 저거 좌파 아니야? 정치하려고 하나?”

별별 악담이 다 쏟아지고 있었다. 그런 어느 날 고영근 목사가 나의 사무실로 찾아왔다. 그때 나이가 60대 중반쯤이었을 것이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잘 하고 있습니다. 위로하러 왔어요.”

그는 내게 20만 원 가량 든 봉투를 쥐어 주었다. 그의 손이 따뜻했다. 그를 살펴보니까 가난의 냄새가 풍겼다. 내가 돈을 받을 입장은 아닌 것 같았다.

한 달쯤 후였다. 그를 만나러 갔다. 까치산 역 부근 언덕 위에 있는 단독주택의 차고를 개조한 방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창문이 없었다. 어둠침침하고 습기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와 마주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북아현동 교회에서 목사 노릇을 했는데 그런 일반 목회는 내 일이 아닌 것 같더라구. 그래서 여러 교회를 다니면서 말을 해 줬어요. 교회가 땅을 사고 큰 건물이나 지으려고 하는 건 바른 길이 아니라고.”

그가 찬 방바닥을 내려다 봤다.

“예수는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려고 했는데 교회마다 인간이 만든 수많은 율법을 만들어 사람들을 얽매려고 하잖아.”

고개를 든 그의 얼굴에 서글픈 미소가 떠올랐다.

“나를 초청하는 교회가 점점 줄어 들더라구. 자기네 이해관계에 맞지 않으니까 당연한 거지.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글로 써서 책으로 냈지. 내가 이 방에서 원고를 쓰고 편집을 해서 인쇄소로 넘겨요. 그렇게 책을 만들어서 직접 들고 땀을 흘리면서 배달했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았는데 이미 내가 낸 책이 마흔네 권이야.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 몰라.”

벽에 붙은 철제 캐비닛이 보였다. 안에 책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제목들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왔다. 바쁘다는 핑계로 그 후 그를 보지 못했다. 미안했다. 그래서는 안 되는데. 그가 그 후 어떻게 죽었는지 나는 모른다.

늙은 나는 동해 바닷가 집에서 오래 전 죽은 그를 떠올린다. 미소 짓는 그가 시간 저쪽에서 내게 다가온다. 소박해 보이는 회색 옷을 주름 하나 없이 다려서 입고 있었다. 그를 만난 무렵부터 나도 원고지에 세상을 향한 외침을 또박또박 적었다. 고소를 당하고 여러 개 배상소송의 피고가 됐다. 조사를 하던 한 검사가 말했다.

“우리 검찰을 계속 까는 걸 알아요.”

다른 검사가 전화를 걸어 협박했다.

“변호사를 계속할 뜻이 있는 겁니까?”

그때마다 죽은 고영근 목사가 떠올랐다. 그가 있던 감옥을 생각하면서 내 고통이 삭아 들었다. 말하고 감옥 가고 말하고 감옥 가고 그는 왜 세상에 왔을까. 예수는 노동자였다. 가난했다. 죄인으로 처형당했다. 그러면서 말했다. “나는 이 일을 하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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