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교회 사모님이 대학로 무대에 서신다니?

그저 지나가는 행인 역이나 맡으셨겠거니 짐작했는데 주연 배우로서 무대를 압도하고 계셨다. <니체와 나들이를>

시골도 시골 나름이라지만, 이곳은 그야말로 깡촌 중의 깡촌이다. 그곳에 어림잡아 20여 년은 족히 되었을 법한 작고 낡은 교회가 하나 있다. 신자라고 해야 꼬부랑 할머니 열 분 남짓. 이번 주에 열 명이 모이면 다음 주엔 다섯 명이 되고, 또 그 다음 주엔 일곱 명이 되는 식이라 출석 통계는커녕 주보(週報) 한 장 발행하기 힘든 형편의 교회다.

그곳에 목사님 내외분이 부임하셨다. 말이 좋아 부임이지,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라"는 찬송가는 누구나 부르지만 정작 이런 오지에 선뜻 발을 내딛는 이는 드문 법이다.

목사님은 본인 몸도 성치 않은 형편이면서도 고물 봉고차를 직접 몰아 이 집 저 집 할머니들을 모시러 다닌다. 예배 때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지극정성이다. 신자가 목사를 섬기는 게 아니라, 목사가 할머니 신자들을 상전처럼 받드는 이곳은 벌써 10년 넘게 이어져 온 우리 시대의 전형적인 농촌 교회다.

요즘처럼 큰 도시의 대형 교회 밑에서 아부하며 세습이나 자리를 탐하는 세태 속에서, 이분은 존재만으로도 존경을 불러일으킨다. 비록 나와 정치적 견해는 정반대일지라도, 사상은 사상이고 정치는 정치일 뿐. 우리는 서로의 신념을 존중하며 오랜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님으로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연극 좋아하세요? 이번 토요일에 대학로에서 제 아내가 출연하는 연극이 있는데, 초대하고 싶습니다."

뜬금없는 연극 소식에 귀를 의심했다. 시골 교회의 사모님이 대학로 무대에 서신다니? 그저 지나가는 행인 역이나 맡으셨겠거니 짐작하며, 비 내리는 토요일 오후 아내와 함께 혜화역으로 향했다. 도착한 이음센터는 이미 인산인해였다. 요즘 누가 연극을 보나 싶었는데, 공연장은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연극의 제목은 <사는 게 억울하니?>였다. 이 작품은 철학자 니체와 쇼펜하우어가 직접 등장해 한국 사회의 현실을 자신들의 철학으로 풀어내는 독특한 창작극이었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고통을 거울처럼 비춰주며, 강남이라는 거대한 정신병동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허상을 폭로한다.

반면, 니체는 매 맞던 말을 끌어안고 울부짖던 그 광기 어린 사랑을 통해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설령 삶이 고통스러울지라도 그 운명 자체를 사랑하라는 '아모르 파티(Amor Fati)'의 메시지였다. '운명을 사랑하라'는 그 묵직한 라틴어 한 마디가 극장을 가득 채웠다.

사실 내 관심은 연극의 철학보다 "사모님이 언제쯤 나오실까"에 쏠려 있었다. 배우들이 분장을 하고 등장하자마자 나는 깜짝 놀라 아내의 옆구리를 찔렀다.

"여보! 저분 아냐? 사모님 맞지?“ 찾았다.

사모님은 내 짐작처럼 행인 역이 아니었다. 당당하게 극을 이끌어가는 주연 배우로서 무대를 압도하고 계셨다. 내가 아는 분이 저토록 열정적으로 무대를 누비는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를 뿌듯함과 기분 좋은 전율이 일었다.

척박한 농촌 교회에서 할머니들을 섬기던 사모님이 대학로 한복판에서 니체의 철학을 몸소 연기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감동적인 드라마였다.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사랑하라는 '아모르 파티'. 목사님 내외분이 깡촌 교회에서 묵묵히 실천해온 삶이 바로 그 철학의 실천판이 아니었을까.

모처럼, 아주 오랜만에 몇 십 년 만에 니체와 함께 나들이를 다녀온 듯한, 비 오는 동숭동의 여운이 길게 남는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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