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과 인내가 필요한 곳은 정치가 아닌 종교이다.
오늘 조선일보에 이런 기사 제목이 있다.《지금 대한민국 정치엔…관용과 인내가 필요하다》
별일은 아니지만 먼저 말해 두겠다. 내가 오프라인에서 더러 비판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든 기사 제목만 보고 반론한다. 글 쓰는 사람 중에는 글재주로써 흑을 백으로 바꿀 수 있는 글 기술자가 많다. 그들의 주장을 읽으면 까마귀가 백조가 돼 버린다. 동시에 제목도 올곧은 주장이 되고 만다. 그 제목 역시 말장난이고 시선을 끄는 기술이다. 그래서 본문을 안 읽고 반론한다. 말하자면 읽어 본 뒤에 반론해야 할 주장이 있고, 읽지 않고 해도 되는 주장이 있는 것이다.
지금의 정치에 정직과 도덕을 요구할 때인가 아니면 관용과 인내가 필요한 때인가? 자기 잘못을 인혐하는 이가 드물고, 선택적 정의와 공정에 익숙하고, 유취만년하는 이가 줄 선 정치에, 관용과 인내가 치료약이 되겠는가. (유취만년 遺臭萬年; 더러운 이름을 후세에 오래도록 남김)
관용과 인내는 뻗대거나 모르쇠 하는 자가 아니라 뉘우치는 이에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저 주장은 일의 전후를 바꾸어 놓았다. 여기에 우리 정치의 낙후성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잘못은 불어나고, 국민은 고달프고, 나라는 위태해진다. 관용과 인내가 필요한 곳은 정치가 아닌 종교이다.
정치적 가치는 모든 가치에 우선하다. 정직과 도덕을 더욱 강조해야 할 이유이다. 이 마당에 선후가 바뀐 글 제목이 신문에 떡하니 실린 것은 우리의 가치관이 이미 전도됐음을 뜻한다. 피해자나 약자에게 ‘관용과 인내'를 짐 지운 셈이다.
“예의와 청렴, 부끄러움을 모르면 나라가 망한다.” -관중-
“도덕이 무너지면 법률도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로마 격언-
저기 어디에도 '관용과 인내' 하라는 없다
정치에 왜 관용과 인내가 필요한가?
- 무학산(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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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9-12, 17: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