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끼리는 돈 문제는 거론하지 않는 거야.”
누가 내 형제냐
박원순 서울시장이 살아 있을 때였다. 그는 고교 일 년 선배인 나를 형이라고 불러주었다. 그를 포함해서 고교 선후배들 몇 명이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나는 모임이 있었다. 좌장은 원로 정치인이었다. 우리들은 광화문 근처의 작은 한식집 구석방에서 자주 모였다.
“난 여러분이 단순한 후배 같지가 않아. 전부 친동생 같은 느낌이 들어. 우리들은 형제야.”
1974년 1월 냉기 서린 바람이 종로의 뒷골목을 휘돌고 있었다. 나는 한 낡은 건물 안에 있는 고시학원에 앉아 있었다. 사법연수생들이 아르바이트로 나와 강의하고 있었다. 민법 시간이었다. 넓적한 얼굴에 부드러운 눈동자를 가진 강사가 말했다.
“고시는 궁둥이 싸움입니다. 얼마나 책상 앞에 오래 붙어 앉아 있느냐죠. 저는 8년을 그렇게 했습니다. 늦었지만 수석을 했습니다.”
그의 말이 물이 되어 내 가슴을 적셨다.
“저는 연애를 했습니다. 8년 동안 오직 한 여성만을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결혼했죠.”
그가 우러러보였다. 그는 검사를 하고 정계로 뛰어들어 이미 원로가 됐다. 그 자리에 있던 나의 고교 동기가 박 시장에게 물었다.
“원순아 신문을 보면 너 재산이 하나도 없이 빚만 6억 원이라고 하는데 진짜니? 변호사 하면서 돈을 벌었잖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변호사 할 때 돈을 벌었죠. 단국대 근처에 작은 빌딩도 샀죠. 그런데 시민 운동을 하면서 그걸 기부해 버렸어요. 빌딩 주인을 하면서 시민운동을 한다는 자체가 모순이지. 내 자신이 무소유가 되어야 같이 갈 수 있는 거 아닌가?”
박 시장이 변호사 시절 서소문의 대건빌딩에 사무실이 있었다. 그 아래층에서 내가 일하고 있었다. 더러 점심을 같이 했다. 그 시절 냉면집에서 그가 말했던 게 떠올랐다.
“시민 운동을 한번 해 보려고 해요. 내 자신이 아래로 내려가서 한 달에 백만 원 정도의 생활비로 살아보면 어떨까? 그렇게 7년 정도 버티면 뭔가 이루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삼 년쯤 지나서였다. 저녁 퇴근시간 무렵 번잡한 교대역에서 그를 봤다. 무거운 가방을 어깨에 메고 머리가 헝클어진 그의 뒷모습이었다. 그는 정말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야 원순아 그렇게 빈털터리면 지금 사는 집은 어떻게 구한 거냐?”
내 옆에 있던 친구가 박 시장에게 물었다.
“우리의 대선배님이 돈을 꿔 주셨죠.”
박 시장이 좌장 쪽을 바라보았다. 감사의 표정이 떠올랐다.
“무슨 그런 소리를? 형제끼리는 돈 문제는 거론하지 않는 거야.”
좌장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박 시장이 갑자기 저세상으로 갔다. 일 년이 흘렀다. 박 시장의 부인과 딸이 나의 법률사무소를 찾아왔다. 형 같던 선배 부부가 준 돈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걸어왔다는 것이다.
“돈에 무심한 박 시장 모르게 조금씩 생활비를 꾼 적이 있어요.”
박 시장의 아내가 말했다.
“아버지가 남긴 건 책과 자료 뿐이예요. 저는 지금 몰래 알바를 하고 살아요.”
나는 죽은 박 시장 부인의 소송대리인이 됐다. 나의 뇌리에 남아 있는 것은 ‘형제’라는 단어였다. 조폭 사이의 형제 같은 의리를 본 적이 있다. 청담동의 한 일식집에서 조폭 출신 두 명을 만났었다.
“우리는 1986년 일어났던 서진룸쌀롱 사건으로 감옥살이를 하는 장진석 형님의 동생들입니다.”
그들이 목을 빼고 나를 보았다.
“형님을 빼내려고 법무장관까지 설득했습니다. 문제는 국민여론입니다.”
나는 그들을 다시 보았다. 표정에 형의 아픔이 들어 있었다. 그들의 의리는 진짜였다. 나는 법원에 조정을 신청했다. 내가 중재하면 일이 단번에 풀어질 것 같았다. 조정을 하는 날이었다. 나는 먼저 가서 조정실에 앉아 있었다. 선배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 아들이 왔다.
“아버님은 어떻게 지내세요?”
내가 물었다. 아들의 눈에서 파란 불꽃이 일었다. 증오가 얼굴에 새파랗게 서려 있었다. 파열음을 울리면서 조정은 단번에 끝이 났다. 허망했다. 나는 바보였다. 도대체 좌장인 선배의 친동생 같다는 소리가 뭐였을까?
박원순 시장 死後 가족들에게 소송을 건 '대선배님'
- 엄상익(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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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9-13, 15:59












참 좋은 소재의 글인데 - 무슨 말인지 좀 설명을 추가 해야 할 듯 - 박시장 딸과 부인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조폭들의 의리가 진심소리하다가 - 소송자의 아들 이야기가 나오는데 조정이 됬다는 건지 안됐다는 건지 - 혼란스러워 - 실례로 선배 대신 아들이 나타나 아버지 어떠신가 물으니 왜 새파란 눈빛이 나고 증오가 있는지 - 이건 아버지에 대한 증오인지 아니면 박시장에 대한 것인지 정말 혼란 스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