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탓을 해도 좋습니다

서울 집값 상승이 오세훈 때문이라면, 저는 왜 다시 서울시장에 당선됐고 서울에서 대통령 지지율은 왜 계속 하락하고 있겠습니까. 오늘 대통령께서는 기자회견에서 2022년 이후 서울의 주택 인허가와 착공이 절반으로 줄었다며, 그 책임을 전임 정부와 오세훈에게 돌리는 듯한 발언을 하셨습니다.

대통령께서 주택이 착공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과정과 시간이 필요한지 모르실 리 없습니다. 열매를 맺으려면 씨를 뿌리고 키우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서울 전역의 재개발·재건축을 모조리 해제하며 그 과정을 통째로 날려버린 분이 박원순 시장이라는 것은 대통령께서 아무리 부인하고 싶어도 달라지지 않는 사실입니다. 누구보다 서울시민들이 이를 똑똑히 기억하고 계십니다.

서울시가 대통령께 제출한 재개발·재건축 경과 보고서를 제대로 들여다보기만 했어도 오늘과 같은 말씀은 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보고서를 들춰보지 않으신 것인지, 보고도 믿고 싶은 내용만 골라 보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민선 8기 오세훈 서울시장 취임 이후 서울 집값이 하향 안정세를 보이다가 이재명 대통령 취임을 전후해 오름세로 돌아섰다는 것은 데이터만 확인해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토허제 재지정 이후 다시 안정세로 접어들었던 집값이 뛰기 시작한 시점 역시 대통령 취임 시기와 맞물려 있다는 것이 팩트입니다.

그런데도 대통령께서는 이러한 사실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은 채, 기회가 될 때마다 오세훈 취임 이후 착공이 줄었다는 말씀만 되풀이하고 계십니다.

‘오세훈 탓’이라고 하면 대통령의 마음은 편하시겠지요. 그러나 서울 집값 상승이 오세훈 때문이라면, 저는 왜 다시 서울시장에 당선됐고 서울에서 대통령 지지율은 왜 계속 하락하고 있겠습니까.

좋습니다. 오세훈 탓을 얼마든지 하셔도 좋습니다. 그러나 제발 지금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 세계’에 대한 인식만이라도 제대로 하시기 바랍니다. 집값 상승의 원인이 누구에게 있는지 따질 여유조차 없을 만큼, 지금 서울 집값은 역대 어느 정부 때보다 오랜 기간 가장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대통령께 강남 몇 곳의 주춤한 가격만 보고 ‘희망회로’를 돌려서는 안된다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께서는 안타깝게도 일부 데이터에만 기대를 걸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서울 외곽 지역의 ‘키 맞추기 상승’ 역시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고 보고 계신 듯합니다.

문제는 이제 서울에서 신혼부부와 청년들의 주거 사다리가 완전히 붕괴할 위기에 놓였다는 것입니다. 대출이 안되니 집을 살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전세마저 씨가 말라가면서 서울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설마 대통령께서 생각하시는 ‘서울 힘 빼기’는 아니겠지요. 청년들을 서울 밖으로 밀어내고 중산층의 내 집 마련 희망을 끊어놓는 것이 균형발전일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지방도 살아나지 않습니다. 서울도 죽이고 청년의 미래도 함께 죽이는 결과만 남을 뿐입니다.

오늘 서울시민들은 대통령에게 듣고 싶었던 대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잘못된 부동산 정책 기조를 전면 전환하겠다”는 답변 대신, “이게 다 오세훈 때문이다”라는 남 탓만 들은 셈입니다.

저는 그동안 참모들이 대통령께 잘못된 정보를 보고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기자회견을 보고 생각을 바꿨습니다. 문제는 대통령 스스로 잘못된 확신에 갇혀 현실을 거부하고 계신 데 있었습니다.

오세훈 탓을 백 번 하셔도 좋습니다. 대신 그 백 번 가운데 단 한 번만이라도 집을 구하지 못해 좌절하는 청년과 대출 문턱 앞에서 내 집 마련을 포기하는 신혼부부의 현실을 제대로 봐주십시오. 그리고 자기 확신의 과잉부터 거두십시오. 시민의 삶이 더 무너지기 전에 대통령의 머릿속부터 완전히 리셋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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