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정신적 피난처였던 무라카미 류

한동안 나는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란 작품 떠올리며 각종 글에 인용하곤 했다. 무라카미 류 村上龍 Murakami Ryu가 세상을 떠났네. 벌써 1주일 전인 17일에. 아득히 건조했던 내 삶의 어느 날, 조잡한 프린트에 어벙하게 제책된 자그마한 판금도서의 모서리가 너덜해지도록 이리저리 몰래 돌려보던 시절이 있었다. 주로 마르크스나 스탈린, 모택동 관련 책들이 많았지만, 전혀 다른 종류의 책들도 간간이 끼어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무라카미 류가 그때 내 나이와 엇비슷했던 24살 나이에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작품이었다. 책은 보잘 것이 없었으나, 내용은 쇼킹했고, 번역은 유려했다. 요즘 나오는 일어 번역서보다 훨씬 나았다. 아마도 일본어를 학문적으로가 아니라 원어민처럼 구사하는 인구가 더 많았기 때문이겠으나~~

내 니잇대와 비슷한 저자의 작품이라곤 상상할 수 없는 문체와 놀라운 소재, 소설작법이라고 하기엔 거침없는 플롯과 표현들이 전혀 어색하거나 거슬리는 곳도 없이 술술 읽혔다. 마치도 안개 속 바람처럼. 그래서 더 쇼킹했을까? 한동안 나는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라는 작품을 무시로 떠올리며 각종 글에 군데군데, 문장이든 단어든 인용하곤 했다. 특히 요즘같은 가을이면 더 자주.

그 후로 무라카미 류의 소설이 나오기만 하면 근 다섯 권쯤을 내리 사다 읽었다. 음식과 요리를 즐기는 내 취향하고도 똑 맞아떨어진 결과겠지만, 책을 쥐면 빨려들어가듯, 홀리듯 단숨에 읽어 치우곤 했다. 특히 '달콤한 악마가 내안으로 들어왔다', '와인 한 잔의 진실', '인 더 미소 수프' 등은 읽고 또 읽으며, 거침없는 문체와 번득이는 상상력에 감탄했다.

그러다 그가 영화감독의 길을 걸으면서 나는 그와 멀어졌다. 실망도 했고. 그렇게 내 뇌리에서 시나브로, 사라졌던 그가 부음으로 돌아왔다. 사인 死因도 없이. 죽기엔 아직 이른 나이인데…. 그의 명복을 빈다.

힘들었던 내 젊은 날에 나와는 너무 다른 환경과 처지, 상황묘사로 내 정신세계를 송두리째 흔들어놓다가 느닷없이 내 관심사인 음식과 요리를 생경하지만, 놀랍게 풀어가는 그 손맛에 감탄했던 시간들이 돌아보면 내겐 shelter, 정신적 피난처 중의 하나였다. 피신처 같은 피난처. 꽤 긴 시간 내게 cozy한 정신적 피난처를 마련해줬던 무라카미 류. 그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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