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플러스를 확신하고 있는데, 그는 일언반구도 없이 만년필로 쓰윽! 쓰고는 다른 조로 갔다. D-1!
나는 두메산골에서 자연과 벗하다가 고등학교 때 대구로 나가서 사람들 사이에서 살았다. 새 소리, 물 소리, 바람 소리에 익숙하던 내 귀와 구름, 산, 풀, 나무, 들, 하늘에 넋을 잃던 내 눈은 한 동안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렇다고 집에 자주 갈 수도 없었다. 차비 때문이었다. 다행히 학교 안에 작은 숲이 있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수업이 끝나면 거기 앉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2학년 때였는데, 박종갑이라는 사팔뜨기 미술 선생님한테 배우게 되었다. 그 선생님은 국전에 입선 경험도 있는 분이고 하여 당시 대구에서는 꽤 유명했다. 우리한테는 두 가지 숙제가 떨어졌다. 전시회 구경하고 팸플릿 가져오기와 일주일에 그림을 두 편 이상 그리기였다. 나같이 재주 없는 사람을 위해 특별히 격려의 말씀도 잊지 않았다.
“나는 신체적 열등감 때문에 아주 힘든 사춘기를 보냈는데, 어느 날 미술 숙제를 정성껏 해 갔더니, 선생님이 크게 칭찬하더라. 그래서 그림을 그리다 보니까 열등감에서 벗어났고 덤으로 오늘날 이렇게 출세했는기라. 열심히 보고 열심히 그려라. 그러면 누구나 잘할 수 있다카이.”
선생님의 그 말씀이 샛별처럼 영롱하게 내 마음을 비추었다. 무료 음악회는 원래부터 열리는 족족 찾아다녔지만 전시회는 담을 쌓고 살았는데, 그 날로부터 나는 뻔질나게 전시회를 찾아다녔다. 그렇게 부지런히 다니다 보니 추상화도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림도 열심히 그렸다. 학교의 작은 숲 한가운데로 ‘50계단’이 있었는데, 거기에 방과 후에는 학생들이 매일 무려 100명 정도 남아서 그림을 그렸다. 나도 거기 끼어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보다 그림을 못 그리던 내가! 나는 하루에 한 점씩, 어떤 때는 두 점도 그렸다! 무척 행복했다. 자연도 찾고 숨은 나의 소질도 찾고! 캬!
한 달 정도 그리고 나니, 제법 그림이 되는 듯했다. 색칠은 주로 내 자취방에서 했다. 한번은 완전히 도취했다. 시험공부는 열두 시를 한 번도 넘긴 적이 없는데, 그 날은 새벽 두 시까지 그림을 그렸다. 두근두근! 나는 미술 시간이 돌아오기만 기다렸다. 이제 드디어 나도 C와 B를 단숨에 건너뛰어 A+로!
드디어 옆으로 비스듬히 내 그림을 보시는 선생님!
“샘요, A+ 주기도 아깝지예?”
초조하게 기다리다 못해 숨 막히는 정적을 뚫고 내가 이 한 마디를 던지기가 무섭게, 그는 일언반구도 없이 만년필로 쓰윽! 쓰고는 다른 조로 갔다.
“D-!'
그 순간 내 눈이 심 봉사가 눈을 뜨듯 밝아져서 내 그림을 제대로 보게 되었다. 거기는 하늘을 날듯이 아름답고 우아한 왕비 심청이 활짝 웃으며 두 손을 벌리는 게 아니라, 돌 틈에서 자란 고구마같이 제멋대로 생긴 촌년이 크림과 분을 덕지덕지 칠하고서 괴이한 웃음을 지으며 칡덩굴 같은 양손에 각각 하나씩 V자를 그리고 있었다.
그 날 이후 나는 두 번 다시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전시회는 여전히 다녔지만. 그러나 한 달 가량 스케치북을 펼쳐 놓고 도시 한가운데서 찾은 자연과 4B 연필로 파스텔로 끝없는 밀어를 속삭이던 그 행복하던 순간, 순간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으로 내 마음 속에서 샛별처럼 빛나고 있다.
(2005. 10. 27.)
내 마음의 샛별
- 최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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