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개혁을 위한 한 작은 목소리(4)

깡패도 지나가는 소년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고 충고하는 공부, 공부, 공부의 나라에서 모든 공부는 권력으로 통한다
교육개혁을 위한 한 작은 목소리(4)
조선 중기 이후 서민들의 무의식 세계를 가장 잘 나타내는 문학작품이 바로 춘향전이다. 거기서 성춘향과 방자와 향단이는 일반 서민, 이몽룡은 일반 양반이다. 이몽룡의 아버지가 사또라는 것은 한국인의 전형적인 가문 분칠하기다.
만약 이몽룡의 아버지가 사또였다면, 이몽룡이 성춘향과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이미 지체가 하늘같이 높은 양반의 도령이기 때문이다. 그네 뛰는 걸 보고 그렇게 쉽게 만날 수 있는 사이가 아니다. 이몽룡의 아버지는 소설 속에서도 가공의 인물로 보는 게 좋다. 현실적으로 이몽룡의 아버지는 잘해야 초시에 합격한 양반으로 보는 게 자연스럽다.
변학도는 지방에서 한가닥하는, 실질적으로 왕이나 마찬가지로 감히 서민들은 쳐다보지도 못할 양반이다.

일반 양반은 이론적으로는 언제든지 중앙에 올라가 크게 출세할 수 있었고 일반 서민은 바로 가까이 살면서 잘 알고 지내던 별 볼일 없는 양반이 출세하면 잘하면 원님 덕에 나팔 불 수 있었다.
--오늘 날 지역 감정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다 성춘향, 방자, 향단의 마음과 진배 없다.--
양반, 서민 할 것 없이 누구나 요새 식으로 말하면 대박 터지길 기다렸다.
오로지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었다.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 뒷바라지만 잘하면 되었다. 평소에 싹수있는 도령에게 눈 도장 잘 찍어 두면 언제 자기 신세가 펴질지 몰랐다.
자연히 지금 권력을 잡고 있는 자들에 대해 관심이 지대할 수밖에 없었다. 겉으로는 굽신굽신했지만, 속으로는 다 두고 보자고 별렀다.

무의식은 꿈속에서 나타난다. 꿈만 꾸면 양반은 과거에 장원 급제하고 서민은 과거에 급제한 가까운 양반 덕에 나팔을 불었다. 춘향전은 바로 이런 꿈의 세계를 너무도 아름답게 시원하게 잘 보여준다. 지금도 한국인은 춘향전을 끊임없이 영화로 만들고 있다. 당연하다. 이것이 바로 한국인의 무의식 세계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래로 공통된 흐름이 하나 있었다. 지방의 군사력이 꾸준히 약화된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마침내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이방원이 사병을 이용하여 2차 왕자의 난으로 정변에 성공하고 나서 왕권을 확실히 하기 위해 사병을 혁파 이후(1400년 정조 2년), 그 누구도 사사로이 군사를 보유할 수 없었다.
지방의 군사도 지휘권은 모두 문관에게 있었다. 이런 현상은 이미 고려 때부터 나타난 현상이다. 강감찬 장군이 사실은 문관이었던 것이 이를 잘 설명한다.

그 누구도 반란을 일으킬 수 없었다. 일으켜 봤자 그건 찻잔 속의 태풍밖에 안 되었다. 군대가 아주 보잘것없었기 때문이다.

이건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지방 군사력의 약화에 이은 무장해제는 자연히 중앙 집권의 강화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중앙 집권이 곧 왕권 강화는 아니었다. 그 경우는 태종, 세종, 세조가 절정이었다.
중앙에서 모든 관리를 내보내는 일은 서양에서는 극히 최근의 일이다. 절대 군주 시대에도 이것이 완전 정착되기에는 한참 걸렸다. 귀족의 세력이 워낙 대단했던 것이다. 지방 분권이 원칙이었다.

우린 중앙에서 관리를 파견하는 일이 과거를 도입한 고려 광종 때부터 본격화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완전히 정착되었다. 이 때 나온 속담이 바로 저 유명한 속담이다.
--말이 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이 나면 서울로 보내라.

중앙에 진출한 문신들이 모든 걸 장악했다.
이들이 정치를 온통 주물럭거렸다. 사림파들이 본격적으로 중앙에 진출하게 되는 연산군과 중종 시대에 일시적 충돌이 있었지만, 멀리 조선초의 정도전과 성삼문, 조선 중기의 조광조의 실패한 개혁이 시간차를 두고 결국은 성공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들의 힘이 너무 세어졌다. 왕이 허수아비와 같은 신세로 전락했을 정도이다.
숙종과 영조, 정조가 이 두꺼운 벽을 깨려고 갖은 애를 다 썼지만, 중과부적이었다.

이렇게 공부만 열심히 하면 과거에 급제하고 과거에만 급제하면 나라 전체의 정치에 참여할 수 있고 참여하다 보면 권력과 토지와 명예를 다 잡을 수 있었으니, 사람들이 교육과 정치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 교육열과 정치열병은 한국인은 거의 벗어날 수 없다. 학생보고는 지나가던 동네 아저씨도 '공부 열심히 하라'하고 심지어 나이 몇 살 더 먹었다고 동네 깡패도 안면이 있는 학생보고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한다. 한국인에게 교육은 첫사랑임이 분명하다. 누구나 공부, 공부, 공부, 공부, 공부를 입에 달고 다닌다. 못 이룬 첫사랑에 대한 꿈이 이토록 애틋하다.
말은 생각이고 생각은 무의식이다. 자기도 모르게 누구나 이 말을 한다는 것은 교육열이 이미 한국인의 집단무의식이 되었다는 말이다. 이걸 없앨 수는 없는 법이다.

정치도 그렇다. 뭐 좀 잘 나간다하는 사람의 최종 목표는 정치다. 그렇게 사람들의 욕을 얻어먹으면서도 정치에 대한 미련은 버리기가 그리도 힘든 모양이다. 결혼한 후에도(전문 직업을 가진 후에도) 끊임없이 정부(lover)를 두고 싶어한다(정치에 입문할 기회만을 엿본다).
설령 정치에 입문하지 않는다고 해도 성인이 되어 특히 남자들이 단 하루도 대화에서 정치 얘기가 빠지는 경우가 있는가. 이 정치에 관한 지대한 관심도 한국인에게 집단무의식이 되었다는 증거이다. 이것도 강제로 없앨 수 없다.

[접는 말 --문제 제기]

문제는 교육과 정치에 전 국민이 이토록 폭발적인 관심을 쏟아 붓는데도 불구하고 현재 이 두 부분이 한국에서 가장 낙후되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두 분야를 제대로 고치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모든 문제가 꼬이게 되어 있다. 교육과 정치가 현재 모든 분야의 발목을 잡고 있다.

교육 개혁, 민주화를 그렇게 외쳤는데도 왜 이 모양일까. 다같이 차분히 생각해 볼 문제다.
한 마디로 표현하라면 나는(내 주관적인 생각이란 말) 교육과 정치를 지금까지 억누르려는 생각만 하고 막을 생각만 했지, 이 거센 물이 잘 흘러갈 물길을 마련하지 않았던 데 있다고 본다.
한강을 어찌 모래주머니로 막으랴.
잘 다스려 이용할 생각을 해야지.

자세한 이야기는 교육 개혁, 정치 개혁이란 말로 제목을 바꾸어 나름대로 정리해 볼까 한다.
(200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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