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의 유쾌한 반란 6.29선언으로 5년 단임 대통령 직선제가 여야 만장일치로 도입된 이래, 노태우 외에는 모조리 바닷가 출신이 인왕산 호랑이가 되었다. 노태우는 사실상 어부지리를 취했다. 허허실실 물태우는 양김씨보다 한 수 위였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앙숙으로 절대 양보지덕(讓步之德)을 발휘하지 않을 것을 알고 김대중을 정치적으로 사면하여 삼자필승(三者必勝)의 구도를 만들었던 것이다. 김대중 사면으로 호남 사람들의 민심을 얻었을 뿐 아니라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니, 노태우는 꿩도 잡고 봉황도 품었던 셈이다.
 
원수 사이였던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이 와인 잔을 우아하게 부딪치며 3당 합당하여 민자당을 창당했을 때, 아마 김종필은 노태우의 삼자필승법을 다시 한 번 노렸을 법하다. 게다가 그는 내각책임제라는 안전판까지 만들었다. 설령 김영삼한테 지더라도, 그가 물러나면 영원히 30%당인 김대중당을 물리치고 만년 여당에서 여유 있게 임기 제한도 없는 수상(首相)이 될 수 있다고 계산한 듯하다. 그러나 그는 기 싸움에서 김영삼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난 김종필은 ‘내각책임제 각서’를 공개했다. 김종필은 김영삼이 창피해서 고개를 못 들 줄 알았다.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김영삼은 그까짓 휴지조각 쳐다보지도 않고 앵돌아서서 고향 거제로 내려가 버렸다. 자신을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판(민자당)을 깨도 좋다는 뜻이었다. 여기서 양반 김종필은 차마 산통 깰 수는 없는지라 한 발 물러섰다. 아니, 영원히 물러섰다. 아예, 대통령 후보 경선 참여도 포기한 것이다. 내각제는? 그건 다시 나중에 김대중에 붙을 때 공수표로 써 먹을 일이었다.
 
김종필이 떨어져 나가도 민자당(신한국당)은 여전히 막강했다. 이번에는 이회창이 기 싸움에서 졌다. 김영삼은 수틀리면 ‘못 먹어도 고!’ 한다는 걸 몰랐던 것이다. 결국 부산경남표를 이인제에게 몰아줘서 김대중을 대통령에 당선시킨 것이다. 김종필은 이번에도 대통령 신랑 들러리 역할에 그쳤다. 처음에는 총리도 역임하는 등 목에 힘 꽤 주었지만, 이내 사냥 끝난 사냥개 신세가 되었다. 내각제도 헛물, 산업화와 민주화의 화해도 헛물, 5.16쿠데타 재인식도 헛물, 김종필은 김대중과 김정일이 얼싸안으면서 쓸모 있는 바보로 전락했다.
 
이회창은 ‘이번에는!’ 하고 노렸지만, 상대도 안 될 것 같았던 노무현에게 졌다. 그 전에 정몽준이 제2의 김종필 역할을 맡았다. 단일화의 미끼에 혹하여 여론조사를 믿고 덥석 물었다가 물 떠난 물고기 신세가 되고 말았다. 능구렁이 김종필은 그나마 총리 내정과 장관 재청권이라도 얻었지만, 정몽준은 지분을 1%도 못 챙기고 비웃음거리로 전락했다. 덕천가강의 말처럼 되었다. ‘적을 믿은 바보’였다. 치킨 게임(담력 싸움)에서는 바닷가 출신에게 뭍 출신은 상대가 안 된다. 뱃사람의 후예는 옳건 그르건 결국 자기 뜻대로 끌고 간다. 작은 걸로 큰 걸 이긴다. 이회창은 이번에도 정치는 조직이라는 것, 나와 뜻이 다르더라도 상대방에 포섭되거나 내 표를 갉아 먹을 것 같은 사람은 예를 갖춰 모셔야 된다는 것을 몰랐다. 바닷가 사람은 태풍의 기미를 알아채듯 이런 걸 직관적으로 알아채고 승부수를 띄울 줄 안다.
박근혜는 영일만에서 바다를 질리도록 보며 자란 이명박한테 졌다. 대통령 후보 경선 룰(rule) 경쟁에서 이명박이 불쑥 제의한 치킨 게임에 말려들어 패배했던 것이다. 자기 맘대로 안 되면 아예 판을 깨자고 나서는 이명박한테(김영삼 수법) 눈 뜨고 코 베인 것이다. 민주주의의 대원칙인 1인 1표를 무시하고 역선택이 얼마든지 가능한 휴대전화 투표를 6분의 1이 아닌, 6배로 부풀리는 반민주적 룰 싸움에서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원칙을 고수하지 못하고 송양지인(宋襄之仁)을 발휘하는 바람에 뻐꾸기한테 집을 빼앗기고 말았던 것이다. 헌 집(한나라당)만이 아니라 새 집(청와대)도 빼앗기고 말았던 것이다. 학습효과가 있었던가, 박근혜는 5년 후에는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았다. 이재오와 김문수를 여반장으로 물리쳤다. 그런데 제1당의 당내 경선에서는 이회창도 두 번이나 성공했다.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다. 결승전이 남았다. 좌파정부가 10년 실정으로 민심을 잃어 40전 40패하던 때와는 사뭇 다르다. 예선이 곧 결승이었던 때와는 사뭇 다르다. 재미있는 것은 이번에도 박근혜의 상대자는 바닷가 출신이다. 안철수 또는 문재인이다. 그런데 이들의 뒤에는 바닷가의 기(氣)도 맥을 못 추는 마기(魔氣)가 있다. 마교(마르크스교)가 바로 그것이다. 이 마기는 김씨공산왕조의 벼랑끝전술(brinkmanship)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김정일은 미국과 한국을 상대로 1993년부터 2011년 죽을 때까지 완승을 거두었다. 잃은 것은 하나도 없었고 얻은 것은 백두산처럼 쌓였다. 완패한 한국에서 득세한 세력이 386의 등에 업힌 민통당과 통진당과 원탁회의이다. 국민의 이목을 속이기 위해 이번에는 이들이 ‘천사’ 안철수를 끌어들여 판을 키웠다. 새 판을 짜고 있다. 안철수가 속으로는 그들과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쳐 있으면서 겉으로는 정치판 전체에 대해 혐오감을 나타내자, 젊은이와 김무현(김대중노무현)파는 회심의 미소를 띠며 열렬히 지지할 수 있었다.
 
이무기 안철수는 칼집에 슬쩍 손을 대는 것으로 새 판을 짜고 있다. 협박을 받았다며 수강생이 한 명밖에 없는 일개 교수 주제에, 제1 대변인도 아닌 제2 대변인을 내세워 박근혜와 이명박을 싸잡아 부도덕 집단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것은 검증도 피하고 야권단일화에서도 주도권을 쥘 수 있는 꽃놀이패다. 거기에 신문과 방송과 포털을 대부분 장악한 저들은 전방위로 박정희의 무덤에 침을 뱉기 시작했다. 불리할 때 스스로 폐지한 연좌제를 공격형 무기로 되살려 김일성과 김정일, 김대중과 노무현에 대한 공격을 사전에 차단하는 선제공격에 나섰다. 박근혜는 이미 이들에게 주도권을 빼앗겼다. 기 싸움에서도 밀리고 새 판 짜기에도 밀린다. 어제 한 말 다르고 오늘 한 말 다르다. 그러면 반집으로 아슬아슬 패(敗)한다.
 
더 세게 나가야 한다. 더 큰 판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저들처럼 사소한 것으로 꼬투리 잡는 게 아니라 중차대한 것을 공론화해야 한다. 먼저 통진당의 노골적인 친북 노선을 파헤치고, 그들과 연합한 민통당을 공격하고, 노수희가 참가한 원탁회의를 공격하고, 북한인권에 침묵하는 저들을 공격해야 한다. 김대중이 김정일에게 핵개발비 5억 달러 바친 것을 공격하고, 그것을 전달한 박지원의 매국 행위를 공격해야 한다. 편지 한 통 주고받지 못하고 100억 달러나 갖다 바친 햇볕정책의 반역성을 공격해야 한다. 당연히 하늘과 땅과 사람을 동시에 속인 능구렁이의 능구렁이, 이무기 안철수의 위선을 폭로해야 한다.
저들이 잔가지에 붙은 이파리를 흔들며 시야를 흐릴 때, 거기에 말려들지 말고 줄기를 들추고 뿌리를 파헤쳐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산다.
 (2012. 9. 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