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장학회가 5·16장학회의 모체라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부일장학회가 정수장학회의 모체가 되었다는 일부의 주장은 잘못됐다. 부일장학회가 독립법인으로 등록된 자료, 부일장학회 기본자산으로 소유권이 확인된 자료는 찾아보기 어렵다. 부일장학회는 부산일보의 부설 기구였을 뿐이다. 부일장학회의 설립취지문에는 “취학의 기회가 경제적 제한을 받을 수 없다함은 오늘날 사회체제에 있어서 당연히 보장되어야 할 사회 정의입니다. 본사 <부산일보>는 이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부일장학회를 설립하였습니다(하략)”로 기록되어 있다.
김지태 씨가 5·16장학회에 제출한 ‘기부 승낙서’에는 부일장학회의 기본재산인 부산 시내 토지 10만 147평이 개인소유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2005년 노무현 정권 때 국가정보원의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5·16 장학회가 김지태 씨로부터 토지 10만 147평 등을 강제 헌납 받아 장학회를 구성했다”라고 주장한 것은 사실과 다르다. 김지태 씨가 기부한 토지는 이미 군용지로 징발당하여 사유재산권 행사가 불가능한 땅이었다. 金씨가 국방부와 5·16 장학회에 이중으로 기부해 문제의 토지가 국방부로 소유권이 넘어 갔기 때문에 5·16 장학회의 재산이 되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김지태 씨 傳記(전기)에는 부일장학회가 두 차례에 걸쳐 6,590명에게 총 9,280만환의 장학금을 지급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기본재산이 없는 부일장학회가 어떻게 자금을 마련해 장학금으로 지급하였는지 그 기록은 찾기 힘들다. 1960년 부산일보 경상비 지출자료에 장학금으로 4,300만환이 지출된 기록만이 있다.
5 ·16장학회는 김지태 씨 소유의 언론 3사를 기부하기로 승낙서를 쓴 1962년 6월20일 이전인 5월3일, 독립운동가 스코필드 박사가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박정희 의장에게 인재양성을 위한 장학사업 권유와 성금출연을 계기로 본격 추진되었다고 한다. 朴 의장은 스코필드 박사의 권유를 받은 다음날 “스코필드 박사의 정성어린 성금을 받았을 때 뜨거운 감격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정부의 장학계획을 실천에 옮김으로써 그 의의를 더욱 높이겠다”고 담화를 발표하고 최고회의 손창규 문교사회위원장에게 장학금 제도를 조속히 추진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되어 있다.
장학기금은 일반 국민과 기업인, 해외동포 등을 대상으로 한 汎(범)국민적 모금으로 이병철, 정재호, 김연수씨 등 경제인들이 적극 동참했고 하와이, 일본 등지의 교민들도 성금을 보내왔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으로 미루어 볼 때 5·16장학회는 김지태 씨의 재산기부와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추진됐음을 알 수 있다. 5·16장학회의 추진과정에서 김지태 씨의 기부재산이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부일장학회가 5·16장학회의 모체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부일장학회'는 독립법인이 아닌 부산일보 '부설기구'였다
- 문무대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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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10-26, 13: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