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는 온 나라를 혼돈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야당은 권력을 빼앗을 절호의 기회로 삼고 희희낙락하고 있고 언론은 제정신이 아니다. 변방에서 숨죽이고 있던 온갖 잡새와 갈까마귀들도 ‘얼씨구 때가 왔구나’하며 들고 일어나 우짖고 있다. 그러나 뜻있는 국민들은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며 심란해진 마음을 추스르며 한숨짓는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가 심복의 흉탄에 맞아 시해당한 쓰라린 참상을 목도했으면서도, 자신은 정작 40여년 쌓아 온 정(情)을 뿌리치지 못하고 일개 아녀자에게 발목을 잡혀 이 나라를 이 모양 이 꼴로 몰고 온 데 대해 질책의 원성이 드높다.
역대 정권 때 마다 있었던 세칭 비선실세(秘線實勢)들의 탈선행각을 되새기며 ‘역사는 흐르면서 자정(自淨)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노태우 정권의 황태자 비리, 김영삼 정권의 소통령(小統領)과 김대중 정권의 홍삼(弘三)트리오 게이트, 그리고 노무현 정권의 봉하대군과 이명박 정권의 영일대군이 저지른 막대한 돈치기 노략질은 그때마다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특히 전직 대통령 두 명은 영어(囹圄)의 몸이 되었고 자살한 전직 대통령도 나왔다.
지금 최순실 게이트를 즐기며 공자 왈 맹자 왈 하는 정치꾼들은 그 당시 게이트의 공범이나 방조·방관자들이 상당수다. 폐족들이고 전과자들이 많지만 지금은 얼굴에 철판을 깔고 나와 우국지사인양 떠들어 대고 있다. 역대 정권의 게이트마다 나라가 곧 망할 것 같은 위기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세월이 지나고 나니 순진한 민초들은 그때의 사건들을 감쪽같이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다.
이병주는 그의 소설 《산하(山河)》에서 “역사는 바다와 마찬가지로 자정작용을 가진다. 위대한 역사의 전환기에 서서 스스로를 정화할 의지를 잃은 민족의 앞날이 빛날 것이란 예상은 도저히 할 수가 없다”고 적었다. 오늘의 최순실 게이트도 역대 정권의 게이트처럼 시간이 흐르면 잊힐 것이다. 그래서 이병주는 “태양에 바라면 역사(歷史)가 되고 월광(月光)에 물들면 신화(神話)가 된다”고 했다.
일본 다쿠쇼쿠(拓殖) 대학교수로 나카소네 전 총리의 브레인이었던 다나카 아키라(田中明)는 《한국정치를 투시(透視)한다》라는 그의 저서에서 “앞으로 누가 한국에서 대통령이 된다 해도 한국정치는 나라와 백성이야 어떻게 되든 오직 권력쟁탈에만 매달렸던 조선시대 당쟁(黨爭)정치의 원형으로 복귀할 것이다. 그것은 한국의 문민(文民)정치가 갖고 있는 전통이고 존재양식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한국에는 국가를 생각하는 지도자는 사라졌고 정객(政客)들만 남았다”고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월간조선 11월호 인용).
지금 한국정치는 국가와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정권 잡기에 혈안이 된 충혈된 눈동자만이 적을 응시하고 있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 임금 앞에서 친명(親明)파와 친청(親淸)파가 말싸움만 하며 다투고 있을 때 최명길의 한탄이 380년이 지난 오늘에까지 전해져 귓전을 울리고 있는 듯하다. “성 밖에는 말[馬]먼지가 자욱하고 성안에는 말[言]먼지만 자욱하니 이 나라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 민족이 어떤 민족인가? 960여 차례의 전쟁 수준 외침(外侵)에도 꿋꿋하게 나라를 지킨 백성이 아닌가? 온갖 시련과 고초를 겪으면서도 면면히 역사를 지켜왔지 않는가? 생각이 깊은 국민들이여, 정쟁배(政爭輩)들의 이전투구에 현혹되지 말고 나라의 현실을 통찰하고 나라의 앞날을 지키는 데 힘을 모으시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