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 기자를 모르는 대한민국민은 없다.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 미국 등 외국에서도 조갑제를 대한민국의 대표적 언론인으로 인정하고 있다. 조갑제 기자는 개인 자격으로 아베 일본총리 등 세계 지도자들과 인터뷰를 할 정도로 지명도(知名度)가 높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이병완 씨는 '투 캅(甲)스'가 좌파정권을 무너뜨리고 이명박 정권을 만들었다는 취지로 말한 바 있다. '투 캅'은 역사의 현장을 직접 취재하는 기자이며 자유진영의 이론가인 행동하는 지성 '조갑제'와 '국민행동본부'의 지휘관 '서정갑'이라고 했다.
조갑제 기자는 그의 행적(行跡)이 보여 준 것처럼 대한민국을 대표할 만한 기자요, 원로 언론인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이의가 있을 수도 없을 것이다. 조갑제가 한국 현대사의 격동기를 발로 뛰고 눈으로 확인한 50여 권의 역사기록이 그 증거이다. 어느 역사학자도 해내지 못한 역사현장의 생생한 기술은 소중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과 5·18 광주사태, 부마항쟁 등에 대한 조갑제의 기록과 저술에 대해 시비를 걸어오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팩트 중심의 그의 역사기록은 가히 역사서(歷史書)에 버금할 수준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연구는 압권이다.
이처럼 뛰어난 조갑제의 인생 역정에 그가 직접 말하지 않는 귀중한 사연들이 있음을 처음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조갑제는 부산 경남 지역의 수재들이 모여든 '부산고등학교' 출신이다. 당시 부산고등학교 졸업생들은 주로 서울의 명문대학으로 진학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런데 조갑제는 그런 경향과는 달리 국립 부산수산대학을 지원 수석 합격했다. 그는 수석합격 소감에서 "파도야 치건 말건 바다는 좋은 곳"이라며 "앞으로 우리나라는 해양개척으로 국가의 미래를 살려야 한다"고 소감을 밝힌 바 있다.
조갑제는 공군에서 제대하고 대학 2년 중퇴 학력으로 국제신문 기자가 됐다. 사회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남해안 수산물에서 중금속 물질 검출', '포항 앞바다 유전개발 사업 경제성 희박' 등 특종기사를 발굴보도하여 한국기자협회로부터 특종상을 받기도 했다. 왕성하게 기자 활동을 하던 조갑제는 5공시절 해직기자의 한 명이었다. 조갑제는 좌절하지 않고 월간조선 등에서 특유의 근성과 노력으로 대기자가 됐다.
그의 모교 부산수산대학교(현 부경대학교)는 언론인으로서 모교를 빛내 준 데 대해 그 공로를 인정해 명예졸업의 영광을 안겨 줬다. 조갑제는 명예 수산학사가 됐다. 조갑제는 또 '월간중앙'이 현상공모한 '사회평론가' 상도 획득하여 사회평론가로 등극했다. 이때 논문의 주제는 산업사회에서 씨족사회가 어떻게 그 명맥을 유지 관리하고 있는가에 대한 연구였다. 부산 연제구 양정동 일대에 세거(世居)하고 있는 청도 김씨 문중을 모델로 했다.
조갑제는 이와같이 검증받은 언론인이자 사회평론가이다. 요즘 자칭 저술가요, 사회평론가라고 자랑하는 날라리 촉새들과는 차원과 품격을 달리한다. 조갑제는 눈보라치는 엄동설한, 요즘도 대한민국의 헌법을 수호하고 자유를 지키기 위해 애국시민들과 함께 대오를 같이하며 투쟁하고 있다. 조갑제가 스스로 말하지 않는 몇 가지 사실을 밝히는 것은 조갑제의 인물탐구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조갑제 기자가 말하지 않는 ‘조갑제 이야기’
- 문무대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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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26, 01:25












<참좋은세상>님의 의견을 들어 반론도 실어보면 어떨지에 호응하여 한가지 반론은-
기라성같은 김대중논설가나 조갑제 기자도 마찬가지로 -적화통일을 주장하심이 625와 베트남 실례를 드시기에 -저는 반론 - 그때는 공산권전체가 도와주고 또 베트남은 정글이라는 자연조건과 당시의 아날로그식 전쟁기술수준에서 공산화 된 것이지만 - 현 북한은 남한의 한개 군 경제력에 중소 공산권지원은 지났고 북핵문제로 중러마저 유엔제제에 동참하는 국제 국내 환경변화와 디지털, 스텔스화 된 전쟁기술의 발전으로 적화통일주장은 낡은 사고방식이라고 지적하자 - 조갑제의 위대함은 그 다음부터 적화통일을 그전만큼 언급하지 않으시는 것이었다. 인정할 건 인정하는 자세이다. 그 나이에 화석화를 누구도 깨기 어려운데 이분은 달라 보였다는 것이다.
무엇도 그렇지만 특별하게 본인이 느끼는 것은 북한에 대한 관심과 사랑입니다. 둘도없는 통일운동가이기도 하지요. 실질적으로 본인이 모스크바 망명시절 조갑제가 파견한 황성준 현 문화일보 논설위원을 만나 탈북벌목공에 대한 특종기사가 나갔으며 그때 처름 귀순자에서 탈북자 명칭이 탄생했고 또한 지금도 탈북자문제해결로 된 유엔난민1호로 남한에 들어온 당사자로 키워준 기자이기도 합니다.
조갑제 선생님은
짙은 어둠 속에서 새벽 빛을 비추시고,
하나의 源泉으로 모든 냇물을 맑게 하십니다
조갑제의 인격에는 아무나 범접(犯接) 할 수 없는 영광(榮光)이 있다. 그 영광은 휘황(輝煌)찬란(燦爛)하다.
조갑제닙 글 잘보고 있습니다 유촉새와는 완전히 다르지요 감사합니다
천상병 시인의 시집에 ‘천상병은 천상 시인이다’ 라는 시집이 있습니다. ‘조갑제는 천상 기자다’ 라고 하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세상 직업 중 놈者자가 들어가는 직업이 記者 말고는 없던데, ‘글 써서 먹고사는 놈’ 이란 뜻의 ‘記者’라는 직함이 부끄럽지 않은, 기자다운 기자입니다.
휼륭한 어른이신데...
그리보지 않는 분들의 반론도 실어보는 것이 어떨지.
휼륭한 분을 휼륭하다고 하는 것과
"잘난 사람을 참 잘났어요." 하는 것의 차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