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童心으로-金相沃의 주옥같은 詩모음

눈, 아기 무덤, 착한 어린이, 봉선화
'金相沃詩全集(창비, 2005년)'에서 뽑은 詩를 소개합니다.


눈

온 세상 뜰안인 양 포근히도 고요한 날!
저 하늘 푸른 속에 깊숙이 숨었다가
흰 날개 고이 펼치고 춤을 추며 나리네.

헐벗은 가지에도 흐뭇이 꽃이 벌고
보리 어린 이랑 햇솜처럼 덮어주고
오는 철 새로운 봄을 불러오려 하느냐.

깃드는 추녀 끝에 낙수소리 들리거든
참고 견딘 추움 헌옷처럼 벗어두고
우리네 헐린 살림을 다시 가꿔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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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무덤

우리 아기
고운 아기
자는 무덤은--

푸른 잔디
금잔디
곱게 깔리고
다복솔도 동무 짠
동그란 무덤.

아기 혼자
외롭기로
무덤 위에는,
할미꽃 한송이
피어 있지요.

우리 아기
고운 아기
쉬는 무덤은--

오리나무
숲속으로
길이 열리고,
시냇물도 흘러가는
금잔디 무덤.

밤이면 아기 혼자
울고 있는지,
이슬방울 풀잎에
젖어 있지요.

우리 아기
고운 아기
노는 무덤은--

호랑나비
흰 나비
앉았다 가고,
종달새도 노래하는
양달쪽 무덤.

이봄 한철
다 지나고
겨울이 오면,
소복눈이 내려와서
덮어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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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어린이

기어드는 초막집
토방에 자고,
도톨밥 씨락국도
먹으면 삭고.

개똥밭에 개똥같이
뒹굴고 놀고,
자갈밭에 차돌같이
여물어가는,
우리는 우리 고장
착한 어린이.

박쪼각 사금파리
장난감 하고,
맨발에 웃통 벗고
소꿉질 하고.

말똥밭에 말똥같이
뒹굴고 놀고,
뽈동나무 뽈동같이
여물이 드는,
우리는 우리 고장
착한 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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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화

비오자 장독간에 봉선화 반만 벌어
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볼 것인가
세세한 사연을 적어 누님께로 보내자.

누님이 편지 보면 하마 울까 웃으실까
눈앞에 삼삼이는 고향집을 그리시고
손톱에 꽃물 들이던 그날 생각하시리.

양지에 나무 앉아 실로 찬찬 매어주던
하얀 손가락 가락이 연붉은 그 손톱을
지금은 꿈속에 본 듯 힘줄만이 서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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