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상은 북한의 문화공작원"

1992년 안기부는 윤이상이 17회에 걸쳐 김일성과 접촉, 북한의 조종을 받고 활동해 온 북한의 문화공작원이라고 발표했다.
1월 26일 보도된 KBS 뉴스9 보도비평 - 윤이상은 북한의 문화공작원



[정치] 관련자들 “진실 밝혀져 다행”

<앵커 멘트>
동백림 사건으로 억울한 고초를 겪었던 관련자들은 때늦은 발표지만 이제라도 진실이 밝혀져 다행이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김덕원 기자입니다.
<리포트>
유럽의 현대음악과 한국음악의 융합으로 유럽에서 명성을 쌓아가던 윤이상 선생은 지난 1963년 평양을 방문한 것이 화근이 돼 동백림 사건의 主犯格으로 2년 동안의 옥고를 치렀습니다.
그 뒤 독일 정부의 탄원 등으로 석방된 뒤 독일 베를린 예술대학 교수로 활동하며 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결국 고국 땅을 밟지 못한 채 지난 1995년 베를린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윤이상 선생은 사후 남과 북에서 기념 재단이 설립되고 음악회가 개최되는 등 부활했지만 이념의 굴레는 아직도 여전합니다.
<인터뷰> 윤인숙(故윤이상 선생 제자): '그분의 작품이라든가 음악 세계가 좀 더 큰마음으로 본격적으로 한국에 심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동독을 다녀왔다는 친구의 얘기를 듣고도 신고하지 않은 것이 간첩 협의로 확대되면서 6개월 동안의 모진 고초를 겪은 귀천의 천상병 시인.
많은 사람들에 의해 애송되는 그의 시 귀천은 13년 前 천 시인이 하늘로 돌아간 뒤 부인에 의해 '찻집'으로 다시 태어나 시인의 존재를 알리고 있습니다.
<녹취> 목순옥(故 천상병 시인 부인): '남편이 이 소식 들었다면 '그것 봐, 진실은 이기는 거야' 이렇게 얘기 하겠죠'.
세계적인 화가 故이응노 화백의 가족들 역시 40년 만에 간첩 혐의를 벗었다는 소식에 이 화백이 오해를 풀지 못하고 이국에서 돌아가신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KBS 뉴스 김덕원입니다.


지난 26일 오후 1시 국정원 과거사 진실위에서는 동백림 사건 진상조사 결과를 밝혔다. KBS는 작곡가 故 윤이상씨와 故 이응노씨가 이 사건의 억울한 희생자인 것처럼 보도했다.
동백림 사건은 국정원 과거사위가 밝힌 것처럼 명지대 철학과 임석진 명예교수의 고백으로 시작됐다. 임석진 교수는 당시 독일 유학생들을 동베를린 주재 북한 대사관의 공작요원에게 소개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 윤이상씨라고 증언했다.
윤이상씨는 1967년 동백림 사건 이래 1995년 사망할 때까지 북한을 수십 차례 오가며 親北反韓 활동을 해왔다. 윤이상이 북한 공작원이라는 증언은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특히, 오길남 박사가 1993년 출간한 ‘김일성 주석, 내 아내와 딸을 돌려주시오’라는 책에는 윤이상씨의 행적이 상세히 소개돼 있다.
오길남 박사는 1985년 윤이상씨의 권유로 가족과 함께 북한에 갔다가 이듬해 홀로 탈출했고 1992년 한국으로 왔다. 그의 가족들은 지금도 정치범 수용소에서 생활 중이다.
1992년 안기부는 북한의 대남선전기구인 ‘한민전’에서 활동했던 오길남 박사의 증언 등을 종합, “윤이상은 김일성 75회 생일축하 기념으로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라는 곡을 제공하는 등 17회에 걸쳐 김일성을 접촉하면서 북한의 조종을 받아 활동해 온 북한의 문화공작원이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1997년 우리나라로 망명한 황장엽 선생도 1998년 출판한 ‘북한의 진실과 허위’라는 책에서 1992년 김일성으로부터 ‘윤이상은 간첩’이라는 말을 직접 들었다고 증언했다.

‘집중취재: 농촌은 쌀팔기 전쟁’과 ‘집중취재: 늘어나는 쌀 재고 산더미’라는 보도는 농협과 농민들이 쌀 수매가를 놓고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과 2005년 10월 말 현재 쌀 재고량이 적정재고보다 150만 석이 더 많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KBS는 국민들의 쌀 소비량이 줄어들어 일인당 하루 평균 221g 정도만 소비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며 쌀 재고의 증가는 농촌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보도했다.
‘연속기획: 농업도 블루오션/(1)공동생산․공동판매가 살 길’이라는 보도는 쌀 농사와 같이 무조건 농사를 짓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농사 자체를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보도였다.
이 보도에서는 670개 국내 키위 재배 농가들이 힘을 합쳐 공동유통 법인을 만들어 성공한 사례와 40명의 농민이 공동유통판매 법인을 만들어 성공한 사례를 보여주었다. 농민들이 지금처럼 모든 문제를 정부의 탓으로 돌리기보다는 스스로 고부가가치 농사를 찾아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농업도 고부가가치 산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농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준 좋은 보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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