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銀姬, 납북마카오여성 '미스홍' 확인

납북된 최씨가 北에서 만났던 '미스홍'은 마카오에서 납치되어온 보석점 점원 '홍렝잉'임이 사진대조로 밝혀졌다
중국정부의 태도에 주목


월간조선 1월호가 영화배우 崔銀姬 씨가 마카오에서 납북된 중국 여성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보도, 중국과 북한의 관계와 맞물려 파문이 예상된다.

1978년 7월 2일 마카오에서는 중국 여성 2명, 태국 여성 1명이 동시에 실종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두 중국 여성 「홍렝잉」과 「소묘춘(蘇妙珍·당시 22세)」은 「타이 풍」이라는 보석상에서 일하는 미모의 여성이었다. 함께 납치된 태국 여성인 「아노차 판조이(당시 24세)」는 「에스토릴」호텔에서 마사지사로 일하고 있었다.

세 여인은 「후쿠다」라는 이름의 일본인 사업가와 함께 있는 것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이후 사라져 버렸다. 마카오 경찰은 3년간 수사를 벌였지만 단서를 찾지 못했고, 세 사람을 「단순실종」으로 처리했다. 이후 세 사람은 마카오 사람들의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이 세 여인이 실종된 것이 아니라 북한에 납치됐다는 사실은, 2004년 7월 일본으로 정착한 미군 탈영병 찰스 젠킨스(65)씨의 고백 수기에 의해 확인되기 시작했다.

지난 12월 13일, 5명의 일본인 납북자와 그 가족들을 일본으로 송환시켜 일본에서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인물인 「일본인 납북자 구출회」니시오카 쓰토무(西岡 力) 회장은 타이여성 아노이 판조이의 가족을 만나 납치사실을 확인한 후 서울로 와서 역삼동의 한 호텔에서 영화배우 최은희(80) 씨를 만났다.

니시오카 회장은 마카오 경찰청에서 확보한 실종 중국 여성 「홍렝잉」의 사진을 들고, 최은희 씨를 찾아온 것이다. 그녀가 1987년 일본에서 발간한 수기에 등장하는 「홍여인」에 대한 신상정보의 기술이 「홍렝잉」의 그것과 거의 일치한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는 月刊朝鮮과의 인터뷰에서, 최은희 씨가 '사진의 주인공은 내가 북한에서 만난 중국 여성 미스 홍이 거의 틀림없다'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니시오카 회장이 전한 바에 따르면, 최은희 씨는 납북된 지 1년 뒤에 「홍여인」을 만났다. 납북된 지 얼마 안 돼 상당히 심리적으로 불안한 때였다. 그녀는 '당시 미스 홍이 동생 같기도 하고 비슷한 수법으로 납치돼서 몇 달 동안 혈육처럼 지냈기 때문에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최은희 씨는 미스홍으로부터 들은 납치과정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1978년 여름 미스 홍이 일하던 보석점에 30세 정도의 청년 둘이 찾아와서 관광안내를 의뢰했다. 그녀는 며칠간 시내 이곳저곳을 안내하면서 그들과 함께 돌아다녔는데 그들은 가이드料를 좀 많이 지불하고 돈도 잘 썼다. 두 명 모두 일본인이라고 했으며 대단히 유복한 가정의 아들처럼 행동했고, 영어 구사도 상당히 능숙했다.

어느 날은 해안을 안내해 달라고 해서 해안에 갔더니 처음 보는 여성 한 명을 소개해 줬다. 나이트클럽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는데, 자신보다 열 살쯤 연상으로 보였다. 네 명이 함께 해안을 몇 번 돌아다니다가 앞바다 쪽으로 나와 거기에 대기하고 있던 큰 배에 억지로 태우더니만 북한에까지 오게 됐다'

홍 여인은 몇 번이고 탈출을 시도했으나 이뤄지지 않았고, 희망이 사라진 후부터 몇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다고 한다.

최은희 씨는 '같은 민족의 인간을 납치하는 것도 그렇지만, 다른 나라 사람까지 납치해 온다는 것은 악랄 그 이상이다. 천벌을 어찌 받을 것인가'라고 분개했다.

한편 니시오카 회장은 '홍여인의 오빠가 「최은희씨가 동생이 북한에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면,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연락을 취해 왔다'며 '곧 마카오로 가서 홍여인의 동생을 만날 계획' 이라고 했다.

그는 세 여인 중 아직 가족이 나타나고 있지 않은, 홍 여인의 친구 「소묘춘」의 신원 확인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홍여인의 가족이 나타난 만큼 소여인의 가족을 찾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그는 말했다.

니시오카 회장과 일본인 인권운동가들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북한에 의해 自國民이 납치된 나라는 일본과 한국을 포함 태국·마카오·레바논·루마니아·요르단·말레이시아·프랑스·네덜란드·이탈리아 등 11개국에 이른다.

니시오카씨는 북한 공작원들이 全세계를 돌아다니며 외국인 납치행각을 벌이게 만든 주범이 金正日이라고 지적했다.

'김정일은 1974년 김일성의 후계자로 공식 지명됐고, 1976년 해외공작 담당부서인 「3호청사」를 접수했습니다. 김정일은 고참 간부들에게 자아비판을 시키고, 「현지화 교육을 철저히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 때부터 북한은 현지화 교육 요원으로 써먹기 위해서 全세계에서 외국인을 납치해 왔습니다.

1970년대 말에 외국인 납치가 집중돼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북한으로 간 赤軍派를 유럽으로 보내 그곳에서 일본 민간인을 납치해 가기도 했습니다. 김정일은 당시 『세계 赤化(적화)』라는 망상에 빠져 있었습니다. 자신이 30년 전에 저지른 외국인 납치가 오늘날 이런 엄청난 국제문제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겁니다'

현재 마카오는 중국의 영토다. 이번 사건을 두고 중국 정부가 어떤 입장을 보일지 주목된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조선 1월호 참조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