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협력’ 표방 넘어 ‘연방제’로 가는가?
자유없는 북한과의 ‘공동체’는 독재지원 불과
요즘 남북관계 기류가 예사롭지 않다. 6자회담을 통한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전망은 점점 더 흐려지는 것 같고, 11월 17일 유엔총회의 대북인권 결의안 가결로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적 관심과 압박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미국 부시정부의 대북 강경자세 또한 날이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가 지난 7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밝힌 ‘북한은 범죄정권’, 9일 로버트 조지프 미 국무부 군축 및 안보담당 차관이 미국 버지니아대 연설에서 언급한 ‘북한정권은 오래가지 못할 것’ 그리고 14일 미국 국무부가 표명한 ‘버시바우 대사의 북한관련 언급은 미국의 정책’ 등의 발언은 모두 미국 정부의 대북자세가 점점 더 강경해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한 마디로 북한은 지금 핵문제, 인권문제, 미·북관계 등으로 인해, 국제적 고립이 심화되어가는 형국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이런 국제기류 속에서 노무현(盧武鉉) 정부의 대북정책은 ‘민족공조’를 명분으로 점점 더 대북 유화적(宥和的)인 자세를 띠고 있다. 대북유화자세와 함께 미국과의 관계는 점점 더 멀어져 가는 추세다.
북핵문제에 관해서는 평화적 해결을 내세우며 중국과 함께 북한입장을 두둔하고 있다.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국제적 관심과 우려를 외면하고 유엔의 대북인권결의안에 기권하여 국제적인 빈축을 사고 있다. 핵문제 등 주요 현안문제들의 해결을 위해서는 우선 미·북관계의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이런 대북(對北)·대미(對美) 입장에 비추어 볼 때, 앞으로 남북관계는 지금까지 김대중(金大中) 정부의 ‘햇볕정책’이 표방해 온 ‘화해·협력 증진’ 차원을 넘어서 ‘남북연합’ 또는 소위 ‘낮은 단계의 남북연방’을 지향하는 쪽으로 이미 방향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16일 발표된 제 17차 남북장관급회담 결과에 관한 공동보도문 내용도 최근 노무현정부가 남북관계의 빠른 진전과 변화를 서두르고 있다는 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번 제주도 남북장관급회담 개막일인 지난 13일 정동영(鄭東泳) 통일부장관은 북측 대표단을 맞이하며 ‘동지’라는 호칭을 사용, 마치 ‘우리는 한편’이라는 자신의 대북인식을 애써 나타내는 듯했다.
이에 대해 북측 대표는 시종일관 남한은 북한 체제를 존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하고, 미국과의 모든 합동군사연습을 중지해야 하며, 다른 나라들의 눈치를 보지 말고 대북경제협력사업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는, 소위 ‘3대 장애’ 제거를 주장하는, 내정간섭적 발언도 주저하지 않았다.
결국 이번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남측은 북한의 사상과 체제를 존중하는 ‘실천적 조치들’을 취하기로 합의했다. 북한이 강력히 요구하는 것은 무엇보다 “구시대적인 법률들과 제도적 장치들을 하루빨리 없애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즉, 국가보안법 같은 것들을 없애라는 말이다. 앞으로 노무현정부가 어떤 ‘실천적 조치들’을 취할지가 주목된다.
정 장관은 이번 남북장관급회담을 앞두고 유난히 ‘2020년 남북경제공동체 실현’과 이를 통한 ‘정치통합’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김대중 전 대통령도 지난 8일 노벨평화상 5주년기념 특별강연을 통해 그의 ‘1단계 남북연합, 2단계 남북연방, 3단계 완전통일’의 3단계 통일방안에서 “일단 제1단계의 남북연합제의 통일체제로 들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 또한 8일 ‘아세안 정상회의’ 참석을 위한 출국에 앞서 김 전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노벨평화상 수상 축하와 함께 김 전대통령의 북한방문을 권고하면서 정부의 적극적인 뒷받침까지 약속했다.
이런 분위기에 보조를 맞추기나 하는 듯 국방부 또한 12월 6일 개최된 제 5차 ‘한·미안보정책구상회의’(Security Polity Initiative)에서 미래 한미동맹에 관해 협의 했는데, 보도에 의하면, 국방부는 이번 회의에서 2006년까지 넘겨받기로 되어 있는 주한미군의 10대 임무 외에 추가적으로 다른 임무도 이양 받는 문제를 거론할 참이었다고 한다.
이런 일들은 모두 현재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마치 정해져 있는 어떤 궤도(軌道)에 따라 재단되어가고 있고, 또 서두르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남북경제공동체’ 및 ‘남북연합’ 실현, ‘한국군의 자주적 위상’ 강화 등은 모두 바람직한 국가정책 목표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목표가 좋으면 어떤 수단도 상관없다는 식의 사고는 경계돼야 한다. 2020년까지 남북경제공동체를 이루겠다는 목표설정 자체는 문제될 게 없다.
그러나 그 ‘남북경제공동체’가 무슨 의미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정 장관 말대로 그것이 남북간에 “사람과 돈, 물자, 정보, 지식 등이 자유롭게 오가는” 관계를 뜻한다면, 그 ‘자유로운 오감’이 북한사회 내에서도 허용되는, 즉 ‘북한의 자유화’가 전제돼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그것은 북한의 현 독재체제를 일방적으로 지원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김대중 전대통령의 ‘남북연합 1단계 통일’ 추진방안 또한 평화통일과정에서 언젠가는 거쳐야 할 단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통일문제를 북핵 6자회담의 연장선에서 이뤄야 할 과제로 삼는다는 것에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오히려 6자회담의 협의초점을 흐리게 하고, 북핵문제 해결을 지연시키거나 불가능하게 할 위험성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군의 ‘자주적 위상 강화’ 문제도 마찬가지다. 한국군의 자주적 위상이 마치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벗어나는 배타적 의미로 생각한다면, 이는 큰 오산이 될 것이다.
특히 북핵문제 해결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한국정부의 대북경협사업이 ‘민족공조’ 차원에서 급속히 확대되거나, ‘남북연합의 1단계 통일 추구’ 분위기가 만연되는 경우, 북핵문제와 관련한 한·미 공조는 고사하고 한미동맹 자체가 위협받게 될 것이며, 북한의 핵보유는 기정사실화 되는 양상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노무현정부가 추진하는 ‘남북경제공동체’ 및 ‘남북연합의 1단계 통일’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를 보장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은 현재 핵문제·인권문제 등으로 국제적으로 고립되는 상황에 처해 있다. 북한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남측의 유화적 대북접근에 적극 화답함으로써 ‘민족공조’를 국제적 고립을 벗어나기 위한 돌파구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 남북관계의 급진전이 예상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한반도의 장래와 그 진로를 좌우하게 될 이런 중대한 문제들은 범국민적 관심과 합의를 기반으로 다뤄져야 할 것이다. 결코 어느 특정기관이나 특정인의 개인적 소신과 정치적 결단으로 추진될 일이 아니다.
남북관계의 진전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것은 어떤 경우에도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적 가치와 평화통일 이념의 항구적 보장을 전제로 해야 할 것이다.
‘남북연합’ 시동 걸렸나?
- 미래한국
-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2005-12-23, 19: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