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山林綠化의 올바른 解法은 정권교체

1972년 직승기(헬기)에서 본 북한땅은 이란이나 이라크 땅이었다. ‘양묘장’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30년 산림녹화(山林綠化) 남한의 노하우 북한에 전한다 - 평양 외곽 통일양묘장 준공식” 13일자 <중앙일보> 1면 오른쪽 머리기사의 제목이다. 13일자 <중앙일보>는 ‘북한에서의 나무심기’를 거의 특집기사로 다루고 있다. 이 관계 기사는 4면에 이어진다. 4면 머리기사의 제목은 “‘북한 나무심기’는 환경문제 - 정치·이데올로기 상관없어”다. <북한산림녹화 종합계획안>을 작성한 ‘오정수 박사’의 ‘말’에서 따온 것이라는 부제(副題)가 붙어 있다.

이 <중앙일보> 기사를 읽는 필자의 심경이 착잡하다. “‘헐벗은 북한 산야(山野)’에 ‘나무심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견(異見)이 있을 까닭이 없다. 그러나, “‘북한 나무심기’는 환경문제”이지 “정치·이데올로기와는 상관없다”는 주장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그것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왜냐 하면, 그 같은 생각으로는 북한의 ‘산림녹화’는 글자 그대로 연목구어(緣木求魚)일 듯 싶기 때문이다. 순간적으로 필자의 상념(想念)은 지금부터 36년 전으로 되돌아간다.

북한의 ‘헐벗은 산야’는 1960년대 말부터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가 되었다. 처음에는 이를 믿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왜냐 하면, 한반도의 지형이 그러한 사실을 믿지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남북한의 경계선이 38선으로부터 비무장지대로 바뀌어 있는 지금 남북한의 면적은 9만(남) 대 13만(북) ㎢로 북한이 남한에 비하여 넓은 대신 남북한의 산야 대 평지(平地) 비율은 각기 3:7(남)對 7:3(북)으로 북한의 지세(地勢)는 단연 산지(山地)가 주를 이룬다. 게다가 인구는 북한이 남한의 절반. 이 같은 이유들 때문에 역사적으로 북한의 빼어난 산수(山水)는 남한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1972년 필자는 북한의 ‘헐벗은 산야’를 하늘로부터 눈으로 보고 확인하는 흔치 않은 기회를 갖게 되었다. 1972년 11월2일부터 4일까지 평양에서 <남북조절위원회> ‘공동위원장회의’가 개최되었다. 이 회의에 필자는 ‘남측 공동위원장 대변인’의 신분으로 참가하게 되었다. 이때 ‘남측 공동위원장’은 <중앙정보부>의 이후락(李厚洛) 부장(당시). 남측 대표단 일행 25명은 육로 승용차 편으로 판문점을 경유하여 개성(開城)으로 가고 거기서부터 평양까지 왕복(往復)은 북한측이 제공한 ‘직승기’(直昇機ㆍ헬리콥터의 북한식 명칭)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북한은 군용 ‘직승기’인 MI8 2대를 제공하여 남측 대표단 일행을 수송했다.

개성을 떠나자마자 눈 아래에 펼쳐지는 광경은 참으로 믿기 어려운 것이었다.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티베트나 이란이지 한반도가 이럴 수는 없지 않은가. 때는 11월초, 계절은 늦가을이었다. 그러나 눈 아래에 펼쳐지는 북한 산야의 모습은 그로부터 얼마 전 민항기(民航機) 편으로 서울로부터 레바논의 베이루트로 날아가면서 이란과 이라크 상공을 지날 때 눈에 익어졌던 그곳 산야의 모습 그대로였다. 녹색(綠色)의 흔적도, 거의 한 그루의 나무도 보이지 않는 헐벗은 민둥산의 연속이었다.

‘직승기’ 조종사는 (아마도 그렇게 하라는 지령이 있었을 것이다) 승객들로 하여금 아슬아슬한 느낌을 갖게 할 정도의 저공(低空) 비행을 고집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직승기’의 항적(航跡)은 계속 경의선(京義線) 철로를 따라 초저공(超低空) 비행을 계속했다. 승객들의 시야(視野)를 최대한 축소시키려는 노력이 역력했다. 그러나, 경의선 개성-평양 구간에도 터널이 적지 않았다. 터널이 앞에 나타나면 ‘직승기’는 급상승(急上昇)했고 그만큼 승객들의 시야도 넓어졌다. 이 같은 초저공 비행은 오히려 민둥산의 실체(實體)를 더욱 실감(實感)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직승기’에 탑승한 남측 인원 가운데는 황해도(黃海道) 사리원ㆍ안악 등지 출신들이 있었다. 그들은 ‘직승기’ 안에서 흥분을 누르지 못한 채 눈 아래의 지형지물(地形地物)들을 화제 삼고 있었고 ‘직승기’가 사리원 상공을 날자 인근인 황주 정방산(正方山)의 성불사(成佛寺)가 화제(話題)로 등장했다. 화두(話頭) 가운데는 정방산의 우거졌던 조림(造林) 이야기가 압권(壓卷)이었다. 문득, 이들로부터 탄성(歎聲)이 터졌다. 오른 쪽 기창(機窓) 밖으로 정방산이 보였다. 그러나, 정방산은 그들의 기억에 각인(刻印)되어 있는 산이 아니었다. 지금 기창 밖으로 보이는 정방산은 ‘깎아 중’의 ‘민 대머리’였다.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 헐벗은 산이었다.

북한에 머무는 동안 남측 참가자들은 기회만 잡으면 북측 사람들과 ‘민둥산’ 이야기를 화두로 삼으려 시도했었다. 그러나 북측 사람들은 이것을 화두로 삼는 것을 반겨하지 않았을 뿐더러 북한의 산야가 그렇게 헐벗은 이유에 대해 신통한 설명도 하려 들지 않았다. 그러나, 평양으로부터 개성으로 돌아오는 ‘직승기’로부터의 조금 더 면밀한 관찰의 결과로 그 원인의 일단(一端)을 이해하게 되었다. 좀 더 집중적으로 관찰한 결과로 발견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북한의 취락(聚落)의 가옥마다 뒤뜰에는 우물정(井)자 형으로 ‘장작’을 쌓아 놓고 있었다. 마음속에서 “그렇구나”하는 소리가 우러나왔다. “북한에서는 지금도 화목(火木)을 때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사실은 어느 나라나 산야의 사막화(沙漠化)의 가장 직접적인 원흉(元兇)은 땔감으로 쓰는 화목이다. 남한의 경우도 1945년 해방 직후의 산야의 모습은 대부분 ‘민둥산’이었다. 원인은 역시 조선(朝鮮)으로부터 왜정(倭政)을 거치는 동안 계속 땔감으로 썼던 화목이었다. 오늘날 남한을 녹음(綠陰)이 뒤덮게 된 것은 한 사람의 위대한 지도력의 덕택이었다. 박정희(朴正熙)가 그였다. 그는 사람이 수목(樹木)에 손을 대는 것을 금지시켰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어쩌면 수백년의 근ㆍ현대사를 통해 처음으로 4계절 가운데 봄ㆍ여름ㆍ가을 동안 녹음으로 뒤덮이는 오늘날의 산야가 탄생한 것이다.

남한에서도 한 동안 ‘헐벗은 산야’를 녹색화(綠色化)하기 위한 방법으로 시도된 것이 ‘나무 심기’였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식목일(植木日)’이다. 정부는 봄만 되면 공무원과 학생들 및 군인들을 동원하여 땅에 ‘나무 꼽기’에 온갖 노력을 다 기우렸다. 그러나, 이 같은 ‘나무 꼽기’로는 역불급(力不及)이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많은 경우, ‘나무 꼽기’는 실적(實績) 위주의 눈 가리기가 되는 것이 예사였다. 이승만(李承晩)(당시 대통령)이 영주(榮州) 부석사(浮石寺) 방문 때 생긴 에피소드가 그 극단적인 한 예다. 당시 치안국장 김종원(金宗元)이 인근 지역에서 나무란 나무는 모두 밑둥을 잘라서 이승만이 차량으로 이동하는 영주역과 부석사 사이의 왕복구간 도로 변으로 가져다가 꼽아 놓은 것이다.

남한에서 ‘산림녹화(山林綠化)’를 성공시킨 비결(秘訣)은, 많은 토지 소유주들의 불이익을 초래했고 이에 더하여 적지 않은 부정ㆍ부패의 온상(溫床)을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린벨트’(Green Belt)에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수목 훼손을 법으로 금지하는 것만으로는 ‘그린벨트’를 성공시킬 수 없었다. ‘그린벨트’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연료 대체에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1차적으로는 ‘18 구공탄(九孔炭)’이 그 공신(功臣)이었다. 그러나 ‘18 구공탄’이 오늘날 남한의 녹음으로 뒤덮인 산야를 초래한 결정적 공신은 아니다. 만약, ‘18 구공탄’만으로 연료 대체가 가능한 것이라면 이 역시 남한에 비해 북한이 결정적으로 유리한 입장이다. <한국은행>의 “남북분단의 오늘: 주요경제 지표 비교(2006)”에 의하면 남북한의 석탄 생산량은 280만 대 2,468만톤으로 북한의 생산량이 남한의 9배에 가까운데다가 북한의 인구는 남한의 절반에 불과하다.

남한에서 ‘그린벨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원인은 연료 대체가 한 단계 더 진전하여 석탄이 석유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냉난방(冷煖房) 연료는 물론 산업 에너지 원(源)을 석탄으로부터 유류와 가스로 바꾸는데 성공함으로써 비로소 ‘그린벨트’는 성공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이로써 수목은 비로소 화목으로서의 의미를 완벽하게 상실하고 사람들에게 관상(觀賞)과 조경(造景)의 대상으로 자리를 굳혀서 이제는 누구도 이를 훼손하지 않는 시대가 열렸다. 이것은 대한민국 경제를 세계 10위권으로 끌어 올린 ‘시장경제’와 ‘개방경제’에 의하여 가능해 진 결과였다.

13일자 <중앙일보>의 평양 양묘장 준공 기사 보도에 이어 14일 아침 YTN 뉴스는 김문수(金文洙) 지사의 인물 사진과 함께 경기도의 지원으로 북한 개성에 만들어진 양묘장 소식을 전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KBS-TV는 미국에서 성공하고 있는 프로 골퍼 최경주의 ‘최경주 재단’이 4천만원을 들여서 10만 그루의 묘목을 구입하여 북한의 국경지대 교회를 통해 식목에 나설 계획이라 사실을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기사들을 읽고 시청(視聽)하는 필자의 머리에서는 “이것은 그래서 되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는 상념이 떠오르는 것을 금할 길이 없다.

대한민국에서의 역사적 경험은 산림녹화가 단순한 조림(造林)을 통하여 이루어지지 않는 것임을 보여주었다. 산림녹화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조림과 함께, 그보다는 조림보다 먼저, 연료의 대체(代替)에 성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연료의 대체도 석탄으로의 대체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것은 작금 중국(中國)에서 진행되고 있는 연료 정책의 과정이 웅변해 주고 있다. 석탄을 넘어서 유류와 가스로 옮겨 가는 것이 필수(必需)인 것이다. 지금 세계는 유류와 가스를 넘어서 다음 세대 대체 연료를 향하여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는 석탄으로부터 유류로의 전환 전망이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인 것이 현실이다. 2006년 <한은> 통계에 의하면 북한(384만 배럴)의 원유(原油) 도압량은 남한(88,843만 배럴)의 0.4%에 불과하다.

북한의 에너지 체제가 화목의 단계를 탈출하여 석탄 시대를 거쳐 유류 시대로 옮아가는 것은 아무렇게나 되는 것이 아니다. 이 문제는 북한의 경제정책에 혁명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이를 위해서 북한은 국제고립을 자초한 그 동안의 폐쇄적인 사회주의 명령경제를 걷어치우고 개방적인 국제화와 시장경제를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중국의 경우가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보여 주고 있다.

그런데, 그 같은 근본적인 정책전환은 두 가지의 절대적 선행조건의 충족을 요구한다. 김일성(金日成)으로부터 세습에 의하여 김정일(金正日)로 이어진 북한 특유의 ‘수령독재’를 청산하는 것이 그 하나이고 ‘인치(人治)’를 ‘법치(法治)’로 바꾸는 것이 다른 하나다. 이 같은 근본적인 정책전환이 없이는 다른 경제 분야나 마찬가지로 북한의 산림녹화도 희망이 없다. ‘양묘장’ 건설을 도와주는 것은 ‘밑 빠진 독’에 퍼붓는 ‘한 바가지의 물’에 불과한 것이다.

13일자 <중앙일보> 기사나 14일 아침 YTN 뉴스의 해독(害毒)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 같은 기사의 해독은 많은 대한민국 국민들로 하여금 문제의 ‘양묘장’이 되기만 하면 북한에 무슨 큰 도움을 주는 결과가 되는 것처럼 믿게 하는 환각(幻覺) 현상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양묘장’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지금 남한에서는 종교단체들이 주가 되어서 북한에 ‘병원 지어주기’ 열풍(熱風)이 불고 있다. 평양에는 이 열풍의 와중(渦中)에 ‘안과병원(眼科病院)’이 준공된 지 2년이 넘는다. 그러나, 이 ‘안과병원’이 지금 문제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병원의 정상 운영을 가능하게 하는 주변 산업이 없기 때문에 이 병원은 벌써 병원 운영에 필수적인 ‘소모품(消耗品)’ 결핍 현상이 발생하여 정상 운영에 큰 지장이 초래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병원의 정상 운영을 가능하게 하는 두 가지 조건, 즉 정책의 전환과 연관 산업의 병행 구축이 병행되지 않는 한 병원을 지어주어도 이 역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이 나라의 많은 ‘교회신자’들은 그 같은 사실은 알지 못하는 채 남북을 오가면서 이 같은 ‘밑 빠진 독’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그 ‘빠진 밑바닥’으로 쏟아지는 ‘물’을 받아서 이익(利益)을 챙기는데 이골이 난 현대판 ‘봉이(鳳伊) 김선달(金先達)’들의 하수인이 된 ‘목회자(牧會者)’들에게 현혹(眩惑)되어 문제의 ‘밑 빠진 독’에 열심히 ‘물’을 퍼붓는 기현상(奇現象)이 반복되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13일자 <중앙일보>의 문제 기사의 제목은 바뀌는 것이 마땅하다. “‘북한 나무심기’는 환경문제가 아니다 - 정치·이데올로기로 풀어야 한다”로 바뀌는 것이 옳다. 김정일 정권의 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양묘장’은 100개를 만들어도 북한의 산야는 녹화되지 않는 것이다. 북한의 산야가 녹화되려면 ‘양묘장’을 짓기에 앞서서 북한이 과감하게, 적어도 중국이 하는 정도로, 개혁ㆍ개방을 받아들여 국제화의 길로 나가는 정책 전환을 수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만약, 북한이 그 같은 정책 전환을 수용하지 않을 때는 ‘양묘장’이나 병원과 같은 ‘밑 빠진 독’을 만들어 줄 것이 아니라 김정일 정권을 갈아치울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올바른 접근방법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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