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安 캠프’에 합류한 서울市 관련 인사들의 面面(면면)

‘안철수 캠프’의 박영숙, 김근식, 박선숙, 금태섭 / ‘문재인 캠프’ 한완상의 正體

문재인·안철수 대선 캠프에 서울시 외부 자문위원들이 대거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은 지난 10월18일 열린 서울시 국정감사에서 “연말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서울시의 각종 자문위원회 위원들이 특정 대선후보 캠프에서 중책을 맡는가 하면, 朴 시장이 주최한 행사에 특정 대선후보가 함께 했다”며 선거 중립 훼손 문제를 제기했다.

심재철 의원은 “서울시의 희망서울시정위, 남북교류협력위 등 106개에 달하는 각종 자문위원회에 지난 시장선거 당시 朴 시장을 지원했던 진보인사들 다수가 참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날 沈의원 홈페이지에 올라온 보도자료에 따르면, 안철수 후보 캠프에는 ▲박영숙(안철수재단 이사장, 서울시 시정고문단 고문) ▲박선숙(선대위본부장, 희망서울시정운영위원) ▲하승창(총괄기획단장, 희망서울시정운영위원) ▲금태섭(상황실장, 서울시 제1기 성평등위원) ▲김근식(외교안보자문위원, 서울시 남북교류협력위원)등이 있다고 했다.

문재인 후보 캠프에는 ▲한완상(담쟁이포럼 이사장, 서울시 시정고문단 고문) ▲이혜경(복지국가 위원장, 서울복지재단 이사장) ▲김영경(대선기획위원, 서울시 명예부시장) 등이 있었다. (캠프 內 직책, 서울시 직책 순)


■ 안철수 캠프


1. 박영숙 안철수재단 이사장

박영숙 씨는 민중신학자로 알려진 故 안병무 목사의 부인으로 평화민주당(평민당) 부총재, 한국여성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한 재야운동권 인사다. 朴씨는 2004년 9월16일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는 각계 인사 공동선언’, 2007년 10월17일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각계원로 및 대표인사 선언문’에 참가한 적이 있다.

그는 ▲국가보안법 철폐 ▲6ㆍ15/10ㆍ4선언지지 ▲주한미군 철수 등을 주장해왔다. 2005년 8월15일 ‘민족의 자주와 평화를 위한 선언’에서는 “美軍(미군)없는 한반도를 적극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對美(대미)종속에서 벗어나 주권국가다운 자주성을 확보하고 불평등하고 군사적인 한미관계를 평화적인 것으로 재정립할 때 비로소 새로운 광복이 찾아온다”고 역설했었다. 또 “우리 국민은 지난 60년간 고통의 연속에서도 4·19, 5·18, 6월항쟁 등을 통해 자랑스러운 민주화 역사를 일궈왔다. …이렇게 쌓아온 열정과 역동성은 6·15공동선언의 정신과 함께 앞으로 민주화, 통일, 평화실현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2004년 12월29일字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는 국가보안법에 대해 “진작 철폐됐어야 할 법인데 이렇게까지 된 상황이 안타깝고 분개스럽다”고 주장했다.

朴씨는 이화여대 영문과 재학 중 YWCA(기독교여자청년회) 회원으로 활동, 졸업 후 YWCA 상근 총무가 되어 단체를 실질적으로 이끌었다. 反정부 운동을 펼치던 安 목사가 ‘3·1민주구국선언’에 참여한 혐의로 구속되자 그는 남편의 옥바라지를 하며 본격적으로 재야운동에 투신했다. ‘3·1민주구국선언’은 1976년 3월1일, 소위 재야인사들이 명동성당에서 ▲긴급조치 철폐 ▲민주인사 석방 ▲언론·출판·집회 등의 자유 ▲의회정치 회복 등을 촉구하며 박정희 정권 퇴진을 요구했던 선언을 말한다. 이 사건으로 안병무를 비롯해 문익환, 김대중, 함세웅, 문정현 등이 구속됐었다.

그는 김대중 前 대통령의 요청으로 정치권에 入門(입문)했다. 1987년 13대 大選 직전 김대중 당시 평민당 총재는, 그가 몸담고 있던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에 ‘함께 일할 여성 인사 7명을 추천해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후 朴씨는 평민당에 입당, 이듬해 4월 실시된 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비례대표 1번으로 국회에 入城(입성)했다. 그는 2010년 12월호 <국회보(國會報)>와의 인터뷰에서 “결혼 이후에는 남편인 안병무 교수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우쳐준 멘토였고, 故 김대중 대통령은 정치인 박영숙에게 정치란 무엇인가를 보여준 멘토였다”고 밝힌 바 있다.


2. 김근식 경남대 정치학과 교수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011년 말부터 안철수 씨의 對北(대북)정책 자문을 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同年 12월29일字 <조선일보>는 안철수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지난(注: 2011년) 11월부터 각 분야 전문가들에게 국정 주요 현안에 대해 ‘대선 과외’를 받아왔다고 보도했었다. 같은 날 <오마이뉴스>는 김근식 교수와의 전화통화 내용을 전하며 “12월 초와 김정일 위원장 사망 뒤에 안 원장을 만나 남북관계 현안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대화하고 토론하는 과정에 별다른 의견차이가 없었고, 내 설명을 수긍하는 것으로 느꼈다”고 전했다.

그는 서울대 휴학 중인 1986년 8월, 구국학생연맹(구학연) 산하 조직 自民鬪(자민투) ‘한반도 핵기지화결사저지 및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위한 투위장’으로 활동하다 구속된 적이 있다. 구학연은 표면적으로는 ‘反美구국’과 ‘군부파쇼타도’를 내세웠으나 공안당국은 이들이 내부적으로 북한의 對南 혁명 노선인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NLPDR)을 지향했던 것으로 보았다. 구학연은 主思派(주사파)의 효시격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2010년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위원장 고영주 변호사)가 발표한 《親北·反국가행위 인명사전》에 수록될 100명에 포함됐던 金씨는 소위 ‘북한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북한 관련 보도를 하는 방송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하고 다수의 매체에 칼럼도 기고해왔다.

金씨는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했으니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의 공소권도 사라진 것”(2011년 12월22일, 북한정세 인식 긴급좌담회 발언) ▲“이명박 정부를 위협할 수 있는 최고의 압박 카드 역시 서해상의 군사적 도발과 전쟁 위험성의 가시화이기 때문에 (북한이) 이례적으로 연평도 일반 주민들에게까지 해안포 사격을 서슴지 않은 것”(2010년 12월1일,  <프레시안> 인터뷰)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를 중단하고 제재와 압박을 통해 북한을 굴복시키겠다는 희망적 사고만을 앞세워…”(2011년 6월17일 ‘한국미래발전연구원’ 주간논평)라고 주장하며 김정일 정권을 두둔하고, 이명박 정부를 더 비판하는 입장을 취했다.

지난 5월16일에는 jTBC ‘피플앤토크’에 출연, 햇볕정책에 대해서도 우호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는 “북한의 변화가 더딘 것은 햇볕정책이 잘못됐다기 보다 분단체제에서 상대방을 변화시키려면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린다”며 “미국이 베트남을 상대로 한다거나 중동을 상대로 햇볕정책을 벌이면 효과가 금방 나타난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 경쟁하는 체제여서 한 쪽이 다른 쪽에 볕을 쏘아주는 상황인데 그걸 받아들이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했다. 2008년 1월9일字 <전북일보>에 게재한 칼럼에서도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며 “햇볕정책을 비난하고 엄격한 상호주의를 내세워 북한에게 무작정 비핵화를 강요하는 정부라면 당연히 남북관계는 긴장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도 했다.


3. 박선숙 선대위 본부장

박선숙 씨는 수도여자사범대학(現 세종대)에 재학 중인 1983년, 당국에 의해 불순세력으로 규정된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참여를 시작으로 학생운동에 투신했다.

그가 몸 담았던 민청련은 1985년 10월 적발된 ‘민주화추진위원회(민추위) 사건’의 배후조직으로 지목됐었다. 민청련의 초대 의장을 지낸 김근태(前 국회의원, 2011년 사망)는 민추위를 배후조종한 혐의로 同年 10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당시 공안당국은 金씨의 숙부가 좌익운동을 벌이다가 9ㆍ28 서울 수복 때 월북한 사실과, 외사촌형들(2명)의 월북과 부역 사실도 공개했었다. 朴씨는 지난 6월8일字 인터넷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金씨와의 인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95년에 근태 형(注: 김근태)이 저를 디제이에게 보냈어요. 평소 말수가 적어 ‘크레믈린’으로 불리던 저에게 정당 부대변인을 하라니 정말 도살장 끌려가는 소 같았지요. 못하겠다고 버티는데, 김 선배가 30년 만남 동안 그때 딱 한번 저에게 화를 냈어요. 개인적인 문제로 세상과 담을 쌓고 있던 저를 억지로 세상에 내보낸 거예요…>

金씨의 권유로 정치권에 入門한 朴씨는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에서 각각 청와대 대변인과 환경부 차관을 지냈다. 차관 퇴임 후에는 2006년 강금실 서울시장 후보, 2007년 정동영 대통령 후보, 2008년 18대 총선, 2011년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2012년 19대 총선 선거대책본부장 및 선거전략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18대 국회의원이던 2010년 6월29일, ‘천안함대북규탄결의안’에 반대표를 행사한 70명 중 한 명이기도 했다. 또 연평도 포격 직후인 2010년 11월29일, 朴씨(당시 국회의원)는  2010평화군축박람회 준비위원회와 공동으로 ‘지금 평화를 이야기하자’라는 전시회를 국회 의원회관 로비에서 개최했었다. 전시회 자료에는 ‘천안함 사건의 결정적 증거인 1번 글씨는 설득력이 없다’ 등 천안함 爆沈(폭침)이 북한 소행임을 否定(부정)하는 내용이 포함됐었다. 또 ‘북한은 왜 핵무기를 개발하려고 할까? 재래식 무기만으론 남한을 이기지 못하고 무기 살 돈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큰 한 방이 될 수 있는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거다’라는 문구도 있었다고 한다.

同年 12월2일字 <동아일보> 사설은 “2010평화군축박람회준비위 주최의 친북 反美(반미) 전시회가 열렸다. 韓美동맹을 이간질하고,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이라는 걸 부정하고, 북의 核개발을 두둔하는 내용도 포함됐다”며 “민주당 박선숙 의원은 왜 이런 전시회를 공동 주최했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4. 금태섭 상황실장

이른바 ‘정준길 위원의 협박전화’를 받은 당사자인 금태섭 씨는 1992년 사법시험 합격 후 서울동부지검 검사, 대검찰청 검찰연구관 등을 지낸 인물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출신이다.

민변은 ▲국보법폐지연대 ▲FTA범국본 ▲파병반대행동 ▲평택범대위 ▲광우병대책회의 등을 참여했던 단체다. 민변은 2004년 12월27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7대 국회의 제1의 역사적 책무에 속하는 국가보안법의 완전한 폐지” 운운하며 국보법 폐지 시한부 철야 단식 농성을 전개했다. 민변은 또 국보법 위반사범인 강정구, 송두율과 利敵(이적)단체로 판시된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변호도 했었다.

민변은 북한이 恣行(자행)한 천안함 폭침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했었다. 2010년 9월17일 좌파성향의 참여연대와 함께 “지난 6월 천안함 침몰 장면이 촬영된 열상감지장치(TOD) 원본 등 관련 조사기록에 대한 정보 비공개 처분을 취소하라”며 국방부장관과 감사원장을 상대로 정보공개거부 처분 취소 청구 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냈다. 2011년 8월25일, 민변과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는 ‘왕재산 간첩단 사건’에 대해 “벌써 오세훈 서울시장의 무상급식 주민투표 참패를 덮으려고 대대적인 공안여론 조성이 시작되고 있다”고도 비판했다.

금 씨는 검사로 재직하던 2006년 9월 인터넷 <한겨레>에 ‘현직검사가 말하는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이라는 칼럼을 연재했었다. 그는 同年 9월11일字 칼럼에서 “이 글은 범죄자가 法網(법망)을 빠져나가는 방법을 알려주려고 쓴 것이 아니다”라고 전제하며 “계좌추적을 피하는 법, 완벽하게 증거를 인멸하는 법, 시시각각 좁혀져 오는 체포를 피하는 방법과 같은 것은 여기에 소개되어 있지 않다”고 밝혔다. 금 씨는 이어 ‘피의자로서 수사를 받을 때의 대처방안’을 전하며 “첫째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둘째는 변호인에게 모든 것을 맡기라는 것이다”라고 구체적인 방법을 기술했다.

1회분 칼럼이 연재되자 검찰 측은 내용 부적절 등의 이유를 들어 금 씨에게 연재 중단을 요구했다. 大檢(대검)은 11일 검사장 회의를 열어 금 씨의 글이 부적절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서울지검 검사 일부가 그에게 연재 중단을 요구한 것이다.

검찰 측이 중단을 요구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현직 검사가 외부에 글을 기고할 때 반드시 상부에 보고한 뒤 허가를 받아야 하는 ‘공보 관리 지침’을 어겼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실체적 진실이 규명된 사안에 대해 ‘아무 말 하지 마라’, ‘조서에 도장을 찍지말라’고 종용하는 것은 올바른 검사의 태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당시 정상명 검찰총장도 강경한 입장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강찬우 대검 공보관은 “총장은 금 검사가 상부 보고 없이 기고한 것을 앞으로 검찰을 ‘경영’하는 데 큰 장애가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총장은 금 검사의 수정본을 검토한 뒤에도 “<한겨레>에 건넨 원본부터 수거하라”는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발언출처: 2006년 9월18일字 인터넷 <한겨레>)

결국 복무규정을 어겼다는 등의 이유로 칼럼 연재는 중단되었고, 금 씨는 2007년 검찰을 떠났다.


■ 문재인 캠프


1. 한완상 ‘담쟁이포럼’ 이사장

‘對北 포용정책’을 지지하는 한완상 씨는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던 1980년 5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돼 구속된 前歷(전력)이 있는 좌파학자다.

韓씨는 1993년 김영삼 정부 초대 통일부총리에 임명되어 김영삼 대통령의 취임사 작성에 참여했었다. 당시 金 前 대통령 취임사에는 ‘사상과 이념보다 민족이 중요하며 동맹국보다 민족이 중요하다’는 요지의 내용이 있었다. 이는 대한민국과의 友邦(우방)인 미국보다 헌법 상 反국가단체이자 반란집단인 북한과의 관계를 더 중시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金 前 대통령 취임사 내용은 보수우파세력의 반발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월간조선> 1993년 9월호는 한완상 부총리와의 인터뷰를 보도했다. 그는 대통령 취임사와 관련 ‘동맹국보다 조국이 중요하다면 이해가 되지만 민족이 중요하다는 것은 근대 국가의 개념에도 맞지 않는다’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취임사가 쓰여질 당시의 상황을 고려하면 달리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금년 초 취임사를 작성하던 시기에는 냉전체제가 와해돼 어제의 적성국이던 소련과 중국이 우리의 우방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 민족은 4천년동안 같은 언어와 문화로 동질성을 이어왔고 1천3백년 동안 단일국가를 이뤄온 상수의 개념인데 비해 동맹과 우방의 개념은 변수라는 뜻입니다. 그 이상의 의미는 없습니다. 미국과의 우방관계를 약화시키는 뜻으로 해석될 위험이 있지만 그런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는 ‘흡수통일’ 방식에도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북한의 경우에는 북한 사람들이 남한의 삶의 질, 개방성, 체제유연성 등을 알 수 있는 통로가 완전히 차단되어 있습니다. 현 단계에서는 동서독처럼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다른 각도에서 생각을 해보지요. 북한이 자체 모순에 의해 또는 외부의 충격에 의해 붕괴되었다고 가정합시다. 과연 우리가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흡수하려는 의도도 전혀 없지만 흡수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서의 흡수통일도 바람직한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이어 “지금이건 나중이건 흡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긴다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다. 2200만의 북한 동포를 일방적으로 먹여살리는 일은 10년 내에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韓씨는 통일부총리로 재임하면서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 北送(북송)을 주도했으며 ▲南北공조 바탕의 ‘햇볕정책’ 최초 거론(1993년 5월15일字 <한겨레신문>) ▲‘3단계 통일정책과 통일정책의 3대 기조(注: 3단계: 화해․협력 단계-남북연합 단계-통일국가 단계, 3기조: 민주적·국민적 합의-민족복리-공존공영)’ 등을 구체화했다. 이것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추진했던 ‘對北 포용정책’과 유사하다.

그는 자신의 글이나 인터뷰에서 대한민국을 지켜온 보수우파세력을 줄곧 ‘수구’, ‘냉전주의자’들로 표현했다. 韓씨는 올해 5월부터 인터넷 <한겨레>에 ‘길을 찾아서’라는 제하의 비망록을 연재하고 있다. 그는 5월22일字에서 김일성의 1991년 신년사 내용을 전하며 “남한의 냉전근본주의자들은 북한의 연방제 통일 방안이 적화통일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전일적 적화통일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뼈아픈 현실 인식에서 나온 수정안이라고 봐야 한다”고 했다. 6월1일字에서는 “보수 기독교 지도자들은 대체로 냉전근본주의자들이고 그들의 근본주의 신앙 또한 북한을 사탄으로 정죄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5월29일字에서도 “나는 새 정부 안에 버티고 있는 냉전수구세력의 강고한 힘을 확인하는 것 같아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고도 했다. 헌법에 명시된 '자유민주적 질서에 입각한 통일'을 주장한 세력들을 ‘냉전’과 ‘수구’로 매도한 것이다.

문재인 후보의 자문단체 격인 ‘담쟁이포럼’은 韓씨를 비롯해 노무현 정부에서 국정원장과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김만복, 이재정 씨 등이 포진하고 있다. 이들 모두 對北 포용정책 지지자들로 알려져 있으며, 2007년 노무현-김정일 회담 당시 우리 측 수행원으로 訪北(방북)했던 인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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