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동아' 歷史교과서, <새마을 운동> 부정적 서술일관

<새마을 운동>, 2013년 6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지난 8월30일 교육부 검정을 통과한 두산동아의 ‘고등학교 한국사’는 1970년대 농촌 근대화 운동의 초석이 된 ‘새마을 운동’을 아래와 같이 일관되게 부정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정부는 1970년대부터 근면-자조-협동 정신을 강조한 새마을 운동을 벌여 농어촌 근대화와 소득 증대 사업을 강력하게 추진하였다. 이 운동은 도시에도 파급되어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는 전국적인 의식 개혁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새마을 운동은 농민보다는 정부가 앞장서서 벌였기 때문에 근대화 물결에 희생되는 농민들의 권익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였다. 새마을 운동이 진행되는 중에도 농촌의 어려움은 계속되었다. 이는 1970년대에 이농 현상이 계속되고 소작농이 크게 늘어난 것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전체 농지 중 소작지 비중은 1975년 13.8%에서 1981년 22.3%로 증가했다. 그러한 가운데 농민들이 중심이 된 농민 운동이 활성화되기 시작하였다. 1970년대 농민들은 농민회를 중심으로 정부의 낮은 농산물 가격에 맞서 추곡 수매 투쟁, 농협 민주화 투쟁 등을 벌였다>

[해설] 새마을 운동과 농촌의 근대화

새마을 운동은 농촌 근대화를 상징하는 중요한 운동으로 1971년 전국적으로 시행되어 1975년에는 도시와 공장으로 확대됐다. 새마을 운동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그 가운데 부정적 견해로 두산동아 교과서가 지적한 것처럼 농민의 자율적 운동이라기보다는 정부 주도에 의해 강제적으로 진행된 근대화 운동으로, 결과적으로 ‘도농격차’를 벌렸다는 주장이다.

기사본문 이미지
자료출처: 문화재청
그러나 최근의 연구결과들은 새마을 운동의 강압적 측면보다 그 경쟁적 측면을 부각시키고 있다. 즉 새마을 운동은 국가가 제공한 경쟁의 장에서 농민들이 자신의 이익의 실현을 위해 정부의 지원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결과 나타난 집합적인 상호 부조적 행위라는 점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농촌 지역에 투자하는 정부 자원을 “자조-참여-협동-단결 및 스스로 일하려는 결단을 보여주는” 주민들에게 우선적으로 지원하라고 지시했다. 따라서 “헤엄을 치든지, 가라앉든지”하라는 새마을 운동 전략 하에 정부는 ‘게으르거나’ 자립의지가 없어 보이는 마을은 원조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 전략은 마을 간의 경쟁을 불러일으켰다.

구체적으로 새마을 운동이 본격화된 1971년 朴 대통령은 전국 3만3,267개 행정 里洞(리동)에 시멘트 300포대씩을 무상으로 지원했다.(인용: 한국 현대사 이해, 김광동 外 공저)

이 시멘트로 어떤 마을은 도로 포장, 하수도 사업 등 마을의 숙원사업을 해결했지만, 어떤 마을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박 대통령은 1972년 자체 자금과 자체 협동노력을 통해 성과를 낸 1만6,600개 마을에 대해 다시 시멘트 500포대와 철근 1톤씩을 무상으로 지원했다. 새마을 사업의 선정은 마을 주민들의 책임과 의지에 따라 진행됐다.

1975년 이래 새마을 운동에 참가한 마을은 3만6,000여 개로 한국의 대부분의 마을이 참여했다. 새마을 사업의 건수도 점차 늘어나 1972년에 32만 건에 불과했던 것이 1978년에는 260만 건으로 8배 이상 증가했다. 또한 농민들의 적극적 참여를 알 수 있는데, 1971년부터 1982년까지 새마을 운동에 투자된 금액은 총 52조2,583억 원으로, 이 가운데 정부가 51%를 투자하고 주민들이 49%를 투자했다. 새마을 운동을 통해 농촌의 생활은 크게 향상됐다. 1970년에 전기가 들어오던 마을은 전체의 20%에 불과했으나, 1978년에는 98%로 증가했다. 또한 농가의 소득도 증대됐다. 새마을 운동에 투입된 자원 중 가장 비중이 큰 것은 농한기 생산화 사업, 소득 작목의 입식 등 소득 증대 분야로 총투자 액의 44%를 차지했다.

농로 개설, 마을창고 건설 등 생산 기반 분야는 21%, 복지 환경 분야는 29%였다. 이와 같은 투자에 힘입어 농가 소득은 1971년 당시 도시 근로자 소득의 78.8%에 해당하던 것이 1982년에는 103.2%로 늘어나 도시 근로자를 초과하는 수준에 이르게 됐다.

새마을 운동은 貧農(빈농) 출신 박정희 대통령의 철저한 조국 근대화 정신의 소산으로 1970년대의 경이적인 경제발전을 뒤에서 받들어 준 정신적인 힘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새마을 운동 과정에서 생산된 대통령 연설문, 결재문서, 사업 공문, 사업 서류, 시민들의 편지 등의 22,000여 건의 자료는 2013년 6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새마을운동 기록물’이라는 명칭으로 등재됐다. 농촌 근대화에 관한 종합적 기록이 생생하게 담겨져 있어, 국제 개발기구와 개발도상국가에 귀중한 자원임을 인정받아 이 같이 결정됐다. 새마을 운동 기록물은 그 성격에 따라 국가기록원, 지방행정연수원, 새마을운동중앙회 등에 보관되어 있다.

한편, UN은 새마을 운동을 바탕으로 한 ‘새천년마을계획’이라는 아프리카의 빈곤퇴치 프로그램을 추진할 만큼 큰 이 운동에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반기문 UN 사무총장 또한 아프리카의 UN 산하기관에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배워볼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현재 해외 74개국으로 새마을 운동이 수출되었고, 후진국들을 중심으로 한국의 새마을 운동을 배우겠다며 방한하는 해외지도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리/조갑제닷컴 김필재 spooner1@hanmail.net
<조갑제닷컴
> 컨텐츠의 외부 게재시 제목과 내용을 수정하지 마십시오.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