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에게 '과거사 정리'를 주문한 '두 인물'

정통보수 세력이 從北보다 더 싫어하는 김종인-이상돈
인터넷 <한경닷컴> 캡쳐

▲새누리당에서 박근혜 대선후보에게 '과거사 문제를 정리해야 한다'고 가장 먼저 주문했던 인사들은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과 이상돈 정치쇄신특별위원이다. 

두 인물은 朴후보가 '5.16'과 '維新' 등 역사 문제와 단절하지 못해 발목이 잡혀 있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지난해까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의 ‘핵심 멘토’로 활동했던 김종인 씨는 지난 달 30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 “朴후보가 다음 정부를 맡으려고 하는 사람으로서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나 용산참사 희생자를 만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朴 후보가 28일(8월) 무산된 ‘전태일재단’ 방문을 계속 추진할 것이라 본다”고도 했다. 金씨의 이 같은 발언에는 朴후보가 소위 '산업화의 그늘'(?)을 상징하는 인사와 단체들을  접촉, 과거와 적극적으로 화해하는 제스처를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金씨는 전두환 前대통령이 정권 장악을 위해 1980년 설치한 임시 입법 기구인 ‘국보위’(국가보위입법회의)에서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다 政界에 발을 들여놓은 인물이다.

金씨는 1993년에 동화은행에서 2억1천만 원의 뇌물을 수령해 유죄판결을 받았다. 1심에서 징역 5년, 대법원에서 징역 2년6월 집행유예 4년이 선고됐다.

통상 뇌물죄는 증거를 잡기가 어렵다. 그러나 확실한 증거가 있었고 당시 청와대 역시 김종인 의원에 대한 석방요구안을 올렸지만 민자당 의원들 사이에 반란표가 나와 부결됐다.
  
金씨는 또 새누리당 정강·정책에서 ‘保守’라는 용어 삭제를 주장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그는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내가 의도적으로 화두(보수 삭제 주장)를 던져본 것이다”라며 “대중정당은 이념에 고착돼 있으면 안 된다”고 했다. 이어 “보수라는 말은 정책이 아니다. 논쟁해볼 수 있는 성격의 것이다. 반발하는 사람들이 정상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金씨는 朴후보에게 과거청산을 주문할 입장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과거부터 청산해야 한다.

그런 金씨가 지난 12일에는 MBS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朴후보의 인혁당 관련 입장에 대해 “부녀관계이기 때문에 의식 전환하기가 어려운 모양”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朴후보가 과거 문제에 대해 극복하는 노력을 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상돈 씨의 행태도 金씨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는 지난 달 27일 PBC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서종빈입니다'에 출연해 “10월 야권 후보가 결정되면 치열한 공방전이 있을 테니 그 전에 (인혁당 사건 유가족과의 만남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또 13일 MBN ‘정운갑의 집중분석’에 출연해 클린턴 대통령이 아프리카 순방 시 과거 흑인 노예에 대해 사과했던 사례를 들며 “朴후보도 인혁당 발언 관련 사과에 대해서 너무 민감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2007년 5월 모 保守단체가 주최한 세미나에 참석해 “(대선에서) 한나라당 집권은 물 건너갔다는 생각이 든다...(중략) 愛國 진영은 중대한 결심을 해야 한다. 한나라당을 다시 세우거나, 도저히 불가능하면 한나라당을 대신할 정당을 만들 준비를 해야 한다”고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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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돈 중앙대 교수 홈페이지 캡쳐


李씨는 또 2008년 총선 이후인 4월9일 ‘총선 결과 소감’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6.25가 남침인지 북침인지 대답도 못하는 이정희(前 민노당 대표)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민노당 비례 3번으로 입성한 이정희 변호사가 눈에 띤다. 국방부 회의 때 여러 번 만난 적이 있는 이정희 씨는 비록 나와 노선은 다르지만 소신 있고 딱 부러진 자세가 인상적인 젊은 변호사다. 그런 ‘투사’가 진보 쪽에 많은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누구 말대로 한쪽은 ‘명사’가 많고, 다른 쪽은 ‘투사’가 많은 것이다.》
 
아직도 같은 생각일까? 아니라면 자신의 視覺을 수정해 공개할 의무가 있는 것 아닌가?  

▲김종인-이상돈 두 인물의 행동을 보면 중국 후한(後漢) 말 영제(靈帝) 때 정권을 잡아 조정을 농락했던 십상시(十常侍)가 떠오른다. 당시 十常侍는 많은 봉토를 거느렸으며, 그들의 부모형제는 모두 높은 관직에 올라 그 위세가 대단했다고 한다.

十常侍 곁에서 훈육된 靈帝는 十常侍의 수장인 장양(張讓)을 아버지, 부수장인 조충(趙忠)을 어머니라 부르며 따랐다. 十常侍는 어린 나이에 황제가 된 靈帝를 주색(酒色)에 빠지게 하고, 황후(하태후)를 마음대로 골라 靈帝에게 바쳤다.

이들은 멋대로 황제의 칙명을 내리는 등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휘둘렀다. 그러나 하태후의 아들 소제(少帝)가 14세에 황제가 되고, 하태후의 섭정과 함께 그녀의 오빠 대장군 하진(何進)이 권력을 잡으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何進이 十常侍를 몰아내려고 하자, 十常侍가 何進과 그의 가문을 먼저 몰살시켜 버리는 ‘十常侍의 亂’을 일으켰다. 이 난은 원소(袁紹)가 1000여명의 내시들을 죽이며 일단락됐다.

참고로 중국에서는 靈帝 재위 기간의 잇따른 재해와 소규모 반란, 그리고 황건적의 난 등으로 靈帝의 재위 기간이 끝남과 동시에, 群雄割據 시대가 열리게 되고, 三國時代로 이어졌다. 

정치인 박근혜는 자신이 기용한 ‘부패(腐敗)의 귀재’ 김종인과 ‘변신(變身)의 달인’ 이상돈과 함께 스스로 '고난의 행군'을 택했다. 이들을 비판하자니 이제는 입만 아프다. 

김필재(金泌材)/spooner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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