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文 시리즈 / 山村餘情(2)

등잔 심지를 돋우고 불을 켠 다음 비망록에 鐵筆(철필)로 군청빛 ‘모’를 심어갑니다. 불행한 인구가 그 위에 하나하나 탄생합니다.
등잔 심지를 돋우고 불을 켠 다음 비망록에 鐵筆(철필)로 군청빛 ‘모’를 심어갑니다. 불행한 인구가 그 위에 하나하나 탄생합니다. 調密(조밀)한 인구가-.
내일은 盡終日(진종일) 화초만 보고 놀리라, 脫脂綿(탈지면)에다 ‘알코올’을 묻혀서 온갖 근심을 문지르리라, 이런 생각을 먹습니다. 너무도 꿈자리가 뒤숭숭하여서 그리는 것입니다. 화초가 피어 만발하는 꿈 ‘그라비아’ 원색판 꿈 그림·책을 보듯이 즐겁게 꿈을 꾸고 싶습니다. 그리면 간단한 설명을 위하여 爽快(상쾌)한 시를 지어서 7 ‘포인트’ 활자로 배치하는 것도 좋습니다.
도회에 화려한 고향이 있습니다. 활엽수만으로 된 산이 고향의 시각을 가려 버린 이 산촌에 팔봉산 허리를 넘는 鐵骨(철골) 전신주가 소식의 제목만을 符號(부호)로 전하는 것 같습니다.

아침에 볕에 시달려서 마당이 부스럭거리면 그 소리에 잠을 깨입니다. 하루라는 ‘짐’이 마당에 가득한 가운데 새빨간 잠자리가 병균처럼 활동입니다. 끄지 않고 잔 석유등잔에 불이 그저 켜진 채 소실된 밤의 흔적이 낡은 조끼 ‘단추’처럼 남아 있습니다. 昨夜(작야)를 방문할 수 있는 ‘요비링’입니다. 지난밤의 체온을 방 안에 내어던진 채 마당에 나서면 마당 한 모퉁이에는 화단이 있습니다. 불타오르는 듯한 맨드라미꽃 그리고 봉선화.
지하에서 빨아 올리는 이 화초들의 정열에 호흡이 더워오는 것 같습니다. 여기 처녀 손톱 끝에 물들을 봉선화 중에는 흰 것도 섞여있습니다. 흰 봉선화도 붉게 물들까- 조금 이상스러울 것 없이 봉선화는 꼭두서니빛으로 곱게 물듭니다.

수수깡 울타리에 ‘오렌지’ 빛 여주가 열렸습니다. 당콩넝쿨과 어우러져 ‘세피아’ 빛을 배경으로 하는 한 폭의 병풍입니다. 이 끝으로는 호박넝쿨 그 소박하면서도 대담한 호박꽃에 ‘스파르타’식 꿀벌이 한 마리 앉아 있습니다. 녹황색에 반영되어 ‘세실·B·데밀’의 영화처럼 화려하며 황금색으로 사치합니다. 귀를 기울이면 ‘르넷산스’ 응접실에서 들리는 선풍기 소리가 납니다.

야채 ‘사라다’에 놓이는 ‘아스파라가스’ 잎사귀 같은 또 무슨 화초가 있습니다. 객주집 아해에게 물어 봅니다. ‘기상꽃’-기생화란 말입니다.
무슨 꽃이 피나-진홍 비단꽃이 핀답니다.
先祖(선조)가 指定(지정)하지 아니한 ‘조셋트’ 치마에 ‘외스트민스터’ 卷煙(권련)을 감아놓은 것 같은 도회의 기생의 아름다움을 연상하여 봅니다. 박하보다도 훈훈한 ‘리그레추윙껌’ 내음새 두꺼운 장부를 넘기는 듯한 그 입맛 다시는 소리- 그러나 아마 여기 필 기생 꽃은 분명히 蕙園(혜원) 그림에서 보는 것 같은- 혹은 우리가 소년시대에 보던 떨떨 인력거에 紅日傘(홍일산) 받은 지금은 지난날의 삽화인 기생일 것 같습니다.

청둥호박이 열렸습니다. 호박꼬자리에 무시루떡- 그 훅훅 끼치는 구수한 김에 좇아서 증조할아버지의 시골뜨기 망령들은 정월 초하룻날 한식날 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 국가백년의 기반을 생각케 하는 넓적하고도 묵직한 안정감과 침착한 색채는 ‘럭비’구를 안고 뛰는 이 ‘제너레숀’의 젊은 용사의 굵직한 팔뚝을 기다리는 것도 같습니다.
유자가 익으면 껍질이 벌어지면서 속이 비져 나온답니다. 하나를 따서 실 끝에 매어서 방에다가 걸어둡니다. 물방울져 떨어지는 豊艶(풍염)한 미각 밑에서 연필같이 瘦瘠(수척)하여가는 이 몸에 조곰式 조곰式 살이 오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야채도 과실도 아닌 ‘유모러스’한 容積(용적)에 향기가 없습니다. 다만 세숫비누에 한겹씩 한겹씩 해소되는 내 도회의 肉香(육향)이 방 안에 배회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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