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풍경이 될 때
오바마의 영어로 읽는 미국의 위기
강형원 | 포토저널리스트·칼럼니스트·대학 강사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서 10년간 근무한 뒤, 계획에 없던 워싱턴 D.C.행이 결정됐다. AP통신에서 뉴욕 본사를 포함한 全 세계 취재 거점 가운데 가장 많은 취재기자가 근무하던 워싱턴 지국의 사진부 책임자로 일해 달라는 제안을 받은 것이다. 필자의 워싱턴 정치 취재는 그렇게 1997년에 시작됐다.
미국에서 대통령감인 정치인을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 가운데 하나는 청중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연설 능력이다. 반세기 동안 미국 사회에서 살아온 미국인 포토저널리스트이자, 현재 동국대학교에서 ‘Visual Literacy A to Z’를 영어와 한국어로 강의하는 필자에게 바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연설은 살아 있는 미국 영어의 백과사전 같다. 관용어와 일상어, 유머와 비유가 어우러져 귀로 듣는 말이 머릿속에서 장면으로 펼쳐진다. 어려운 문제를 설명하면서도 청중을 내려다보지 않는다.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생활의 언어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복잡한 사안을 명료하게 전달한다. 그의 연설을 듣는 것만으로도 미국 영어의 폭과 깊이를 배울 수 있다.
오바마의 장점은 어려운 단어를 많이 안다는 데 있지 않다. 익숙한 단어들을 정확한 자리에 놓아 생각의 깊이를 전달하는 데 있다. 필자가 보기에 이는 현직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연설에서 자주 나타나는 단순한 최상급 표현과 인신공격의 반복과 뚜렷한 차이가 있다. 쉬운 말로 깊이 생각하게 하는 능력과 복잡한 현실을 단순한 적대감으로 축소하는 태도 사이에는 공적 언어의 품격을 가르는 차이가 있다.
이번에 살펴볼 대상은 오바마가 2026년 10월 24일 토요일,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한 중간선거 지원 연설이다. 필자는 그 풍부한 영어가 그려 내는 미국의 현재 모습에 주목했다. 웃음을 유도하는 표현 뒤에는 生活苦가 있고, 신랄한 풍자 뒤에는 권력의 私有化에 대한 분노가 있다. 그 모든 말의 밑바닥에는 트럼프의 재집권 이후 미국의 정치문화와 국제적 신뢰가 훼손되고 있다는 위기의식과, 이제는 그 흐름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흐른다.
여기서는 주요 표현들을 우리말로 풀어, 그 말들이 드러내는 미국의 사회 현실과 중간선거를 앞둔 정치적 위기감을 함께 읽어 보려 한다. 오바마가 제기한 비판은 그의 주장으로 구분하면서, 표현의 의미와 설득 방식을 살펴보겠다.
연설의 문턱을 낮추는 표현부터 보자. ‘a hall pass’는 미국 학교에서 학생이 수업 중 교실 밖으로 나갈 때 교사에게 받는 허가증이다. 어른들의 대화에서는 일상적인 의무에서 잠시 벗어나도 좋다는 허락을 익살스럽게 나타내기도 한다.
오바마가 이 표현을 꺼냈을 때 청중이 떠올릴 사람은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다. 미셸 여사는 오바마 대통령의 8년 재임 기간 내내 높은 대중적 인기를 누렸으며, 백악관의 안주인으로서 두 딸의 사생활을 보호하고 가족의 일상을 세심하게 관리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오바마 가족은 8년간의 백악관 생활을 큰 개인적 추문 없이 마쳤다.
그런 미셸 여사에게 외출 허가증을 받아야 한다는 식의 농담은 오바마 특유의 유머다. 한때 세계 최강대국의 대통령이었던 인물도 집에서는 아내의 눈치를 보는 평범한 남편이라는 친근한 장면을 만들어 낸다. 청중은 자신의 가정생활을 떠올리며 웃고, 연설자와의 심리적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진다.
오바마의 연설 능력은 이렇게 복잡한 설명 없이도 짧은 관용어 하나로 청중의 머릿속에 익숙한 풍경을 그려 낸다는 데 있다. 권위를 앞세우기보다 자신을 낮추는 유머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 친밀감을 바탕으로 무거운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그렇게 웃음으로 열린 마음에 ‘sick and tired of being sick and tired’가 들어온다. “지긋지긋해하는 것조차 이제 지긋지긋하다.” 같은 말을 반복하지만 의미는 제자리를 맴돌지 않는다. 피로 위에 피로가 쌓인다. 분노하고 실망하고, 다시 기대했다가 또 지치는 시민들의 감정이 문장의 리듬에 담긴다. 이것은 단순한 불만보다 깊은 정치적 消盡의 언어다.
‘the likes of which’는 앞서 언급한 대상이나 상황에 견줄 만한 것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오바마는 현대에 유례를 찾기 어려운 무능과 혼란을 비판하면서 이 표현을 사용했다. 그러나 경고를 듣고도 입장을 흐리는 사람들이 있다. ‘equivocate’는 애매한 말로 분명한 판단이나 약속을 피하는 것이다. ‘weren’t crazy about’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는 절제된 口語體다. 두 표현을 나란히 생각하면, 어떤 정치인을 열렬히 좋아하지 않는 것과 그 정치인의 잘못을 명확히 지적할 책임을 피하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오바마는 대통령을 지낸 사람답게 통치의 어려움도 알고 있다. ‘foiling the best-laid plans’는 아무리 치밀하게 세운 계획도 예상하지 못한 일 때문에 틀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모든 결과를 대통령 한 사람의 의지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정책의 ‘rationale’, 즉 판단의 근거와 논리가 더욱 중요하다. 무엇에 ‘squarely focused’, 곧 온전히 집중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시민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는가, 자신의 체면과 이익을 지키는 데 집중하는가.
그 기준에서 읽으면 ‘These are not serious people’은 “이 사람들은 진지하지 않다”는 사전적 번역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公的 책임의 무게를 감당할 자세가 없는 사람들이라는 질책에 가깝다. 오바마는 이 표현으로 행정부 인사들을 비판했다. 정치를 대중의 관심을 끌고 흥행을 추구하는 무대로 다루는 태도에 대한 공격이다.
돈에 관한 표현들은 더욱 선명한 그림을 만든다. ‘pay the tab’은 계산서에 적힌 값을 치르는 것이다. ‘picking a fight’는 먼저 시비를 걸거나 싸움을 거는 행동이다. 지도자가 불필요한 갈등을 벌일 때, 마지막에 계산서를 받는 사람은 누구인가. ‘to the tune of’는 금액 앞에서 “무려 얼마에 달하는”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추상적인 정책 논쟁이 구체적인 비용의 문제로 바뀌는 순간이다.
‘shaking down a donor’에는 기부자에게 압박을 가해 돈을 뜯어낸다는 거친 뉘앙스가 있다. 오바마는 미국 대사가 정치 후원자에게 자신의 신용카드 대금 10만 달러를 대신 갚도록 압박했다는 의혹을 거론했다. 이어 대통령 사면을 원하던 베네수엘라 억만장자가 트럼프의 개인 변호사에게 5,000만 달러를 지급했다는 사례를 제시했다. 여기서 등장하는 ‘lo and behold’는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라는 놀라움과 빈정거림을 동시에 담은 표현이다. 거액의 돈이 오간 뒤 마치 하늘에서 선물이 떨어지듯 사면이 이루어졌다는 오바마의 풍자다.
그가 이어서 사용한 ‘straight-up grifting’은 “대놓고 벌이는 사기성 돈벌이”, ‘on your dime’은 “바로 당신이 낸 돈으로”라는 뜻이다. 두 표현을 결합하면 권력을 이용한 私益 추구의 부담을 국민이 떠안고 있다는 날카로운 비판이 된다.
이러한 비판의 배경에는 실제로 공개된 막대한 금전적 이해관계가 있다. 2026년 6월 공개된 트럼프 대통령의 재산 신고 자료를 분석한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트럼프는 재집권 첫해인 2025년에만 가족의 가상화폐 관련 사업에서 14억 달러가 넘는 수입을 신고했다. 전체 신고 수입은 22억 달러를 넘었다. 이는 순이익이나 개인 자산의 순증가액과는 구별되는 수치다. 가상화폐와 밈코인, 해외 부동산 사업, 기업과의 합의금 등 대통령 개인과 가족의 사업상 이해관계가 백악관의 公的 권한과 얽히면서 이해충돌 논란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오바마는 이런 상황을 두고 대통령과 가족이 재임 중 막대한 富를 축적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의 공격은 대통령의 公的 권한과 私的 사업 사이의 경계를 어디에 그어야 하는가라는 미국 민주제도의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다만 공개된 수입과 자산 증가가 곧바로 불법적인 금전 거래를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오바마의 표현은 이러한 이해충돌 문제에 대한 강도 높은 정치적 고발로 읽어야 한다.
그 비판이 겨누는 모순은 ‘drain the swamp’에 응축돼 있다. 문자 그대로는 늪의 물을 빼는 것이지만, 정치에서는 부패한 워싱턴의 기득권 구조를 청산하겠다는 구호다. 늪을 없애겠다고 약속한 권력이 오히려 私益과 특혜를 키운다면, 그 구호는 스스로를 심판하는 기준이 된다.
권력자의 책임만으로 이야기가 끝나지는 않는다. ‘spineless’는 등뼈가 없다는 말에서 나온 표현으로, 소신도 배짱도 없이 권력에 굴종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enabling’은 잘못을 저지를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거나 묵인하는 것이다. ‘singing his praises’는 찬양을 늘어놓는 모습이고, ‘doing his bidding’은 그의 뜻대로 움직이며 시키는 일을 수행하는 모습이다. 이 말들이 모이면 견제해야 할 사람들이 충성 경쟁에 나서는 정치 풍경이 보인다.
그래서 ‘rein in’이 중요해진다. 말을 모는 사람이 고삐를 당겨 속도와 방향을 통제하는 장면이다. 민주제도의 견제 역시 권력에 고삐를 거는 일이다. 의회와 제도가 그 일을 포기하면, 시민이 선거를 통해 다시 고삐를 잡아야 한다.
그 위에는 ‘the high and mighty’, 곧 자신들이 대단한 존재인 양 군림하는 권세가들이 있다. ‘living high on the hog’는 호화롭게 잘 먹고 잘사는 생활을 뜻한다. ‘cozy up to corporations’는 기업들과 지나치게 가까워지며 환심을 사는 모습이다. 이 표현들로 바라본 사회에서는 권력 주변의 풍요와 평범한 가정의 불안이 한 화면에 겹쳐진다.
‘spruce you up’은 겉모습을 말끔하게 단장해 준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치가 겉모습만 단장한다고 시민의 삶까지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status quo’는 현상(現狀), 곧 현재의 상태를 뜻한다. 대중의 관심에 ‘thirsty’, 즉 목말라하고, 늘 ‘in the limelight’, 스포트라이트 속에 있으려는 지도자에게 정치는 보여 주는 일이 되기 쉽다. ‘flexing’도 힘이나 영향력을 과시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과시가 성과를 대신할 때 公的 책임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stooping that low’는 그렇게까지 비열하게 행동하며 스스로 수준을 낮추는 것이다. ‘look the other way’는 잘못을 보고도 못 본 척하는 태도다. 정치문화의 추락은 선을 넘는 사람과 그 모습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함께 만든다. 처음에는 충격이던 일이 반복되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진 일은 어느새 허용되는 일이 된다.
그사이 시민이 바라는 것은 의외로 소박하다. ‘a fair shot’, 공정하게 도전해 볼 기회다. 반면 ‘bust the family budget’은 가계 예산으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부담을 준다는 뜻이다. 민주제도의 성적표는 거대한 구호뿐 아니라 식료품값과 주거비, 의료비를 치른 뒤에도 한 가정이 버틸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여기에 ‘special interests’, 특정 이익집단이나 그들의 이해관계가 公益보다 앞서는 문제가 겹친다. ‘gerrymandering’은 특정 정당에 유리하도록 선거구 경계를 자의적으로 조정하는 행위다. 시민이 정치인을 선택해야 할 선거에서 정치인이 자신에게 유리한 유권자 구성을 고르려 한다면, 공정한 기회라는 약속도 흔들린다.
그러므로 ‘revamp’, 제도를 대폭 손질하는 일과 ‘usher in’, 새로운 시대를 여는 일에는 실제 결과가 따라야 한다. ‘deliver the goods’는 약속한 성과를 내놓으라는 뜻이다. 이 기준은 민주당에도 그대로 적용돼야 한다. 상대의 무책임을 비판하는 것만으로 자신의 유능함이 증명되지는 않는다. 시민이 생활에서 변화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연설 후반의 표현들은 이 모든 문제를 하나의 진단으로 묶는다. ‘what ails us’는 우리를 병들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out of kilter’는 균형이나 작동 상태가 어긋난 모습이다. ‘anything goes’는 어떤 행동을 해도 상관없다는 무규범의 분위기다. 잘못이 제때 다뤄지지 않으면 ‘fester’, 곪아 간다.
필자에게 이 단어들은 미국의 위기를 바라보는 하나의 틀을 제공한다. 제도의 힘은 법 조문에만 있지 않다. 권력을 가진 사람도 지켜야 할 線이 있다는 사회적 합의에 있다. 그 선이 무너질 때 동맹국과 세계가 미국을 신뢰하는 근거도 약해진다. 미국의 국제적 位相은 군사력이나 경제 규모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약속의 일관성, 제도의 안정성, 권력의 자제력 역시 국가의 자산이다.
그래서 지금을 ‘inflection point’, 방향이 달라지는 중대한 전환점으로 읽게 된다. 필요한 것은 ‘course correction’, 잘못된 항로를 바로잡는 일이다. 정치적 혼란과 제도적 신뢰의 훼손을 당연한 풍경으로 받아들이기 전에 방향을 돌려야 한다는 절박함이다.
‘up and down the ballot’은 투표용지에 오른 각급 선거를 두루 가리킨다. 대통령 한 사람만 바라보지 말고 의회와 주정부, 지역의 公職까지 살펴야 한다는 요청으로 읽힌다. 민주제도의 회복은 하나의 영웅을 기다리는 일이 아니라, 여러 자리의 책임자를 시민이 선택하는 일이다.
이 연설에서 오바마가 던진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미국이 어떤 가치를 지키며 살아갈 것인가였다. “돈이 인간의 가치를 재는 유일한 잣대가 되는” 문화에서는 경제도 정치도 바로잡을 수 없다는 경고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고위 공직자들마저 거짓말과 속임수, 남을 괴롭히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회라면 제도를 고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富와 권력을 얻었다는 이유로 그 과정의 부정직과 횡포까지 용인할 때, 성공을 평가하는 사회의 기준 자체가 무너진다. 필자는 이 대목에서 미국의 위기가 정책이나 정당 간 대립을 넘어, 무엇을 존중하고 무엇을 부끄러워해야 하는지에 대한 공동의 감각이 흐려진 데 있다는 그의 진단을 읽는다.
오바마는 그 자리에 우리가 잊고 지내는 삶의 기본을 다시 놓는다. 가족을 돌보고, 이웃을 돕고, 아이들과 웃고 포옹하는 일. 약속을 지키고, 정직하게 처신하며,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일이다. 그는 이런 가치가 어느 한 정당의 專有物이었던 적은 없다고 상기시킨다. 미국인으로서 공유했던 것이자 인간으로서 서로를 대하는 기본이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청중에게 돌아오는 질문은 분명하다. 우리는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만으로 사람을 평가할 것인가, 아니면 어떻게 살아가고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도 물을 것인가. 미국이 회복해야 할 것은 바로 그 질문을 함께 묻고 답할 수 있는 도덕적 토대다.
마지막의 ‘fired up’은 가슴에 불이 붙듯 열정과 행동 의지가 타오르는 상태를 뜻한다. 지긋지긋함으로 시작한 감정이 행동할 힘으로 바뀐다. 이것이 오바마의 언어가 가진 설득력이다. 웃음으로 거리를 좁히고, 비유로 현실을 보이게 하고, 분노에 이유를 부여한 뒤, 청중에게 자신이 할 일을 돌려준다.
그의 연설에서 배울 것은 영어 표현만이 아니다. 시민을, 생각하는 존재로 대하는 소통의 방식이다. 좋은 연설가는 청중에게 기억할 문장을 남긴다. 더 나은 연설가는 그 문장을 통해 현실을 다시 보게 한다. 오바마의 영어는 그렇게 말이 풍경이 되고, 풍경이 판단이 되며, 판단이 시민의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미국 대통령은 ‘bully pulpit’을 갖는다. 대통령이라는 자리 자체가 국민과 세계를 향해 말하고, 국가적·세계적 話頭를 던질 수 있는 강력한 발언대라는 뜻이다. 대통령이 날마다 뉴스의 중심에 설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발언대에서 무엇을 말하고 어떤 議題를 제시하는가는 대통령 개인의 역량과 品格에 달려 있다.
두 차례 임기에 걸쳐 8년 동안 대통령직을 수행한 오바마는 퇴임 후에도 국가적 議題를 제시하는 힘을 보여 준다. 필자가 높이 평가하는 것은 재임 중 그가 보여 준 절제와 公的 언어의 품격이다. 현직 대통령의 권한 없이도 그의 말이 다시 뉴스가 되고 시민의 판단을 촉구하는 것은 청중과 공감대를 형성하며 현실을 명료하게 설명하는 능력이 여전히 강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직은 발언대를 제공한다. 그 말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힘은 결국 말하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2024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DNC) 에서 연설하는 바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사진 © 강형원 촬영

2024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DNC)를 취재하는 강형원 기자.
강형원은 포토저널리스트이자 칼럼니스트로, UCLA에서 정치학·국제관계학을 전공했다. 44년 전 미국에서 일간지 취재를 시작해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서 10년간 전속 사진기자와 1면 사진부장으로 일했다. 1987년 한국 민주화운동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취재했으며, 1997년부터 워싱턴 D.C.를 거점으로 AP통신의 사진 취재를 지휘하고 로이터통신 선임기자/에디터로 백악관과 미국 정치를 취재했다. 1993년 한국인 최초로 퓰리처상 수상자가 됐으며, 1999년 AP통신의 워싱턴 D.C. 사진취재팀 지휘로 두 번째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2020년부터 한국 역사와 문화 취재에 전념하며 ‘Visual History of Korea’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저서로 『민주화의 현장』(1989), 『사진으로 보는 우리 문화유산』(2022), 『Seonbi Country Korea, Seeking Sagehood』(성인군자의 길을 간 코리아는 선비의 나라·2025)가 있다. 현재 동국대학교에서 ‘Visual Literacy A to Z’를 영어와 한국어로 강의하고 있다.











